![]() 메이저리그의 손꼽히는 명문 구단이지만, 베이브루스를 팔아버린 죄로, 밤비노의 저주에 빠져 86년 동안이나 우승이 없었던 보스턴 레드삭스. 그곳에 한 신인 유격수가 등장했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독특한 타격폼과 준비자세를 가지고, 너무도 정교한 타격을 했던 남자,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타격의 천재 테드 윌리암스가 후계자로 꼽았던 남자, 유격수로서 타격왕을 2년 연속 기록했던 남자, 일생에 한 번 뿐인 ROY(Rookie of the year)를 차지한 남자, 그 열광적인 레드삭스 네이션(보스턴 팬들)들이 보스턴 팀보다도 더 사랑했던 남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보스턴 레드삭스를 사랑한 남자,
보스턴의 심장, 노마 가르시아파라.
혜성과 같이 나타나 훌륭한 성적을 기록한 최고의 유격수, 그렇지만 86년이나 지속된 밤비노의 저주는 풀릴 줄 몰랐다. 새 밀레니엄 최고의 천재 단장 테오 옙스타인은 보스턴을 뒤집어 놓는데,
보스턴의 심장, 노마 가르시아파라 전격 트레이드! 레드삭스 네이션은 분노했고, 노마는 놀랐다. 일부는 보스턴이 노마의 저주에 빠질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렇지만, 운명은 잔혹하게도 보스턴을 누구보다도 사랑한 그 남자가 자리를 비운 그 해에 보스턴의 저주를 풀어버린다. 바야흐로 시작된 보스턴 네이션의 전성기, 그렇지만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노마.
보스턴을 떠난 노마는 마치 저주에 걸린 것처럼 부상을 피하지 못 했다. 여전히 훌륭한 타격을 했지만, 그는 부상에 신음하며 제대로 시즌을 보낼 수 없었다. 2009년 보스턴이 아닌 다른 팀(오클랜드)의 유니폼을 입고, 그가 보스턴의 홈인 펜웨이에 처음으로 다시 발을 디뎠을 때, 네이션은 아직도 그가 보스턴의 심장이었음을 보여주었다. 그가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펜웨이 전좌석이 기립하여 3분여를 박수로 맞았다. 노마는 뭉클한 듯, 헬멧을 만지고 손을 들어 화답했지만, 누구도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펜웨이에서 노마를 볼 수 없었지만, 노마와 네이션의 끈은 한 번도 끊긴 적이 없었다.
2010년 부상에 신음하던 노마 가르시아파라는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노마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단 하루의 계약을 맺었다. 그가 소원했던 보스턴 레드삭스의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기 위해, 단 하루의 계약을 맺었다. 그렇게 그는 펜웨이에, 네이션이 그토록 사랑하던 5번 유니폼을 입고 섰다.
한 순간도 당신을 잊은 적이 없었다. 페드로가 무너지는 순간에도, 기적같은 리버스스윕을 하는 순간에도, 그리고 무엇보다 저주를 깨고 우승하는 그 순간 누구보다도 당신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앞으로도 영원히 네이션과의 끈이 이어지기를...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한 팬이..
Every Fidget Every Twitch Every Toe Tap
I Love You, Nomar Thank You For Everything, Nomar
- By The Entire Nation
부제 : 불편한 진실에 대해 말하다.
불편한 진실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앨 고어가 한 말로 알고 있지만, 이 말을 필자는 '진실이 도덕적, 물질적, 심리적 불이익이나 불편함을 가져다 주는 경우'의 의미로 종종 사용하곤 한다. 가령, 할아버지가 친일을 한 경력 등이 그 비견한 예가 될 수 있겠다. 언제나 궁금증의 대상이기도 한 청년층의 정치 불감증 및 관심 없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니, 그것이 아마도 이 불편한 진실과 관계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필자는 불편한 진실은 그것이 불편함을 느끼는 개인에 대해 '불리한' 진실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비단 그런 개인적인 사정만이 불편한 진실의 면모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 필자가 후배와 대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가치의 옳음에 대해서 얘기하던 필자에게 그 후배가 이렇게 말했다. "오빠의 말이 맞다는 건 나도 알겠는데, 그렇지만 그 얘길 듣는 게 꼭 유쾌하거나 즐겁진 않아." "응? 무슨 말이야? 정확하게 말해봐?" 그러자 그녀는 "내가 만약 나이가 더 들어서 그런 생각보다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내 일을 하고 산다면, 그렇게 소시민과 같은 삶을 산다면, 오빠의 말이 옳다는 것과 무관하게, 오빠의 말은 내 지난 삶을 초라하게 만들 것 같아." -후략- 그 이후에 나는 나의 말이 그런 삶을 부정하거나 초라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말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진보적 가치에 손사레를 치는 집단의 심정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더 이해를 할 수 있었다. 1960년대, 보릿고개를 거치는 것이 너무도 힘겨웠던 그 시절에, 그들은 여러 가족 구성원들을 무사히 살려내야 하는 지상 최대의 가치를 가지고 살았다. 덕분에 그들은 가치의 시대가 아닌 무가치의 시대를 살아야 했고, 삶이 아닌 생존을 희구해야 했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말씀했던 바처럼, 옆에서 부정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약자를 부당하게 짓밟고 있어도, 눈 감고 귀 막고 고개를 떨궈야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 자신만이 아닌 그들로 인해 생존할 수 있는 이들을 구하는 어쩌면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그들은 수많은 가치 갈등을 경험해야 했을 것이다. '과연 이것이 옳은 일인가?, 옳지 않다면 내가 이렇게 가만 있어야 하는가? 혹시 내가 부당과 부정의에 맞선다면, 내게 불이익이 없을까?' 수많은 고민과 가치 갈등의 끝에서 그들은 가치가 아닌 생존을 택해야만 했고, 그것은 누구도 비난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나아가 그러한 고민과 가치 갈등의 시간과 순간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버려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런 행동 없이는, 그들은 엄혹한 시대에 매 순간 가치 갈등과 고민을 마주하게 되고, 도덕적, 윤리적, 심정적으로 비겁한 행동을 한다는 자괴감을 맞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가치의 옳음을 판단하는 기능을 잃어갔고, 버려갔다. 그것은 생존이 우선인 시대에 그들이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 유일하지는 않더라도 더 '적절한' 방법이었는지 모른다. 마치 진화론의 그것들처럼... 그들에게 오늘의 시대는 당혹스러운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나치 시대를 생존한 독일인들은 그들 후세가 "왜 저지하지 못 했냐?"는 물음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권위주의 대신 찾아온 민주의 시대, 무가치나 생존이 아닌 가치와 삶이 경주하는 시대는 그들의 눈 앞에는 예전 그들이 스스로 가치와 옳음을 버려야 했던 것보다 수백배의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모든 가치를 버리고 선택한 생존을 위한 피와 땀과 눈물을 버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이 든 이 특유의 완고함, 30년 이상의 세월 동안 선택하고 추종해서 내 한 몸이 되어버린 삶의 방식, 내 삶에 대한 모욕감, 수치심 등등 수많은 감정이 그들의 마음 속을 헤집어 놓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은 자신에게 익숙함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들 중 상당수는 그들을 '콘크리트'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렇다, 그들은 콘크리트다. 콘크리트처럼 변하지 않고, 제 자리에 주저앉은 채, 뭐가 옳고 그른지 알지 못 하고 행동하는 일이 잦다. 그러나 그 콘크리트 덕분에 지금 우리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들이 가치 대신 생존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삶이 또 다시 그 선택을 강요받았을지 모를 일이다. 아니 적어도 오늘날 이렇게 컴퓨터를 통해서 우리의 의사를 자유롭게 밝히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참고, 이 발전의 모두는 박정희의 공이 아니며, 그 엄혹한 시대에 피와 땀과 눈물로 이 땅을 수놓은 아버지, 어머니들의 공로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한편, 요즘의 젊은이들은 또 다르다. 그들은 일제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국민과 닮아 있다. 그들은 1960년대를 버텨야 했던 이들과는 또 다른 의미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있다. 1990년대 이전의 청년들은 무엇이 옳은지 알기 쉬웠다. 그리고 그 옳음을 위해서 자신을 불살랐다. 그들에게는 1987년의 성공이 강인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일군 것은, '김영삼이나 김대중이 아닌 바로 우리'라는 자신 속에서 그들은 살아 나갈 수 있었다. 그들은 옳음이라는 가치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발전된 대한민국은 그 시대의 청년들에게 폭 넓은 기회를 제공했다. 어둠이 아닌 밝음과 비겁을 이겨낸 용기가 그 시대 청년들의 삶 속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청년들의 삶은 밝음 대신 어둠만이 자리하고 있다. IMF이후 대기업은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오로지 정리해고와 명퇴만을 추종했고, 노동의 유연화는 점점 더 극으로 달하고 있다.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 버렸고, 과거처럼 좋은 대학만 나오면 직장을 구할 수 있는 시대는 종언을 선언했다. 덕분에 좋은 대학 학생들은 더 이상 과거처럼 학생 운동이나 가치 문제에 목을 메지 않는다. 대신 좋은 직장 구하기에 목을 멜 뿐이다. 바야흐로 우리는 경쟁이 극도로 심해져서 더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쟁탈하는 새로운 생존의 시대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지 모른다. 왜 이게 신 생존 시대인가, 과거에는 정말 못 먹고 살았지만, 요즘에는 먹고 살 수는 있지 않는가? 과거보다 더 심해진 자본주의와 사회적 시선, 더 치열해진 스펙 경쟁, 극도로 치닫는 노동유연화는 인간으로 하여금 "조금 더 위에 서지 않으면 당신도.."라고 재촉하고 있다. 물론 대기업과 같은 몇몇 좋은 직장에서는 풍족한 소유를 보장해준다. 그러나 풍족한 소유는 특정 일부에게만 보장될 뿐, 수많은 실직자 및 실업자들에게는 요원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Mc Job일 뿐이다. 이런데도 새로운 생존의 시대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그 속에서 청년들은 1960년대 아버지 세대들이 받았던 선택을 다시 강요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청년들은 그 속에서 불편한 진실을 실감하고 있다. 그들은 경쟁 뿐만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변화를 일으키고 정의나 옳음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 못 하다.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 줄세우기는 그들의 기본적인 자신감을 떨어뜨렸고, 민주화 이후 옳음이 불분명해지고, 투쟁의 대상은 분산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과거 90년대 세대처럼 그들이 일으킨 변화가 가져오는 성공의 자신감을 경험하지 못 했다. 지난 한 해, 우리는 노도와 같이 일어나 광화문 앞에 무려 50-60만이 모여서 우리의 뜻을 밝혔고, 촛불시위는 2,3달여의 기간 동안 반복되었지만, 변화는 아무 것도 없었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심화된 경쟁 구조 속에서 자신을 잃었고, 더 이상 그들이 옳음을 위해 투쟁하더라도 변화는 없다는 결정적 패배감에 빠졌다. 수익이 나지 않는 곳에 투자를 할 리는 만무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시작이다. 그들의 패배감은 그들의 불편함으로 직결된다. 그들은 더 이상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갖기를 꺼려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관심을 갖고 변화를 시키려해도 변화되는 것은 없이 지독한 경쟁 체제 속에서 자신만 뒤로 밀릴 뿐이기 때문이다. 이미 경제 관념에 충실한 세대에게 이것은 너무도 비효율적인 투자일 수 밖에는 없는 것. 옳지 않음을 보고 일어서도 변화 없음(실패=효율0)을 경험한 그들은 1960년대의 청년들이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불편함과 가치 갈등을 일으킬 '불편한 진실'을 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명박이 뭐라고 했건, 한나라당이 뭐라고 했건, 그것을 보고 분노를 느낀 듯, 일어설 용기가 있더라도 변화는 없고, 일어서지 않으면 갈등과 무기력만을 경험하는 상황 속에서 그들은 자연스런 생존 본능(스트레스를 지양하는)에 따라 그 불편한 진실을 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그들의 감정을 이해한다. 우리가 던진 회심의 직구를 저들이 물리쳐 버렸을 때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과거에도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이루어지길 바라지 않았지만..)그렇지만, 필자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써, 그들이 가슴 속에 적어도 무엇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마음만은 잊지 않기를, 혹은 잃지를 않길 바란다. 내가 위에서의 그녀에게 한 말은,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살아가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온 시대를 꿰뚫는 정의를 찾아서 구현하기란 쉽지 않다. 그 분들의 삶은 소시민의 것이 아니요, 당시로서 그들 자신이 발할 수 있는 최대한의 희생이며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변화했다. 더 이상 시대는 그러한 선택을 요구하지 않는다. 변화에 따라 그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독립군이 되는 것, 자신의 가재를 모두 쏟아부은 것만이 독립 운동인 것은 아니다. 어린 아이가 보낸 코 묻은 돈, 김밥 할머니가 전해 준 그날 하루의 일당 모두가 독립 운동인 것이요, 시대의 정의를 구현하는 행동인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 생을 지키기 위해 동조하지 않겠다는 것이야말로 바로 아집이요, 소시민의 삶인 것이다."였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녀는 공감을 해주었다. 이 말이 나이드신 분들께 통할 지는 모르겠지만..적어도 소시민의 삶을 살아가면서 괴리감을 느낄 이들에게는 공감을 얻을 지 모른다는 희망을 느꼈다. 필자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20대이다. 현재의 삶이 얼마나 엄혹하고 잔인한 것인지 결코 모르지 않는다. 실로 체감하고 있다. 홍세화씨와 사석에서 만나서 얘기했을 때, 그분은 내게 "지금의 마음을 잊지 말고, 큰 사람이 되어서 그 마음을 토해내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하려다 그 분이 그걸 모를 리 만무하기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현재를 살아가는 20대로써 청년들에게 바라는 바는, 지금 움직이지 않더라도 무엇이 옳은 것인 지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존을 넘어 삶을 바라보게 된 순간, 생존을 위해 피땀을 쏟고 있는 이들에게 정의와 진리를 보여주자는 것이다. 비난은 무엇보다도 쉽다. 특히 타인들과 함께 하는 비난은 더 쉽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해는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비용은 더 들고, 수익은 딱히 비난보다 나아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시대의 진정한 화합을 꾀한다면, 비난 이전에 화합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함은 명백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콘크리트라는 말을 싫어하고 국개론은 경멸한다. 20대의 청년들을 비난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심정에서 바라봐주는 것도 또한 필요한 일이고, 비난보다 선행되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20대의 청년들 역시 여전히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진보 진영의 명사들이 한나라당에 입당할 때면, "소금을 부어 본 들, 바다가 짜지나. 바닷물에 녹고 말지."라고 말을 했지만, 우리의 20대는 바다를 짜게 만드는 바다에 녹지 않는 강렬한 소금이기를 기원해본다. 나도 이 조악한 글을 쓴다고 경쟁에 뒤쳐지게 되었다. ^^; 다시 들어가야 겠다. 끝으로 내가 좋아하는 한 구절을 적어 둔다.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이 힘들고, 어렵기에 나는 이 길이 진실과 정의로 가는 길임을 믿는다. ps.
어쩌면 애초에 신자유주의란 그런 것이다. 신자유주의란 개인의 경쟁을 통해서 더 나은 사회의 혹은 고용주의 효용을 창출할 수 있다는 믿음에 의거한 바, 그 지나친 경쟁에 인간적 개성이나 창의의 발현은 차후의 문제일 뿐이다. 그것은 사람을 거대한 톱니바퀴 속 하나의 부속으로 생각하기에, 닳으면 언제든 바꿀 수 있고, 조금 더 나은 톱니를 찾으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필연적으로 사람을 생존 경쟁으로 돌입시키고, 적자만이 생존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극한을 지칭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동시에 패자는 쓰러져야 하고, 적자는 아무런 스스럼 없이 패자를 밟고 일어서는 것이 또한 신자유주의인 것이다. 나는 단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밟아 버려야 했던 패자들을 돌아보는 이가 되자는 것이다. 일종의 르네상스의 도래처럼 말이다.
당신은 너무도 바보같은 분이요,
우리는 너무도 멍청한 사람들입니다. 당신은 멍청한 우리가 스스로의 사랑을 깨닫길 기다렸지만, 그것이야말로 바보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지나고 나서야, 잃어버리고 나서야, 당신이 가시고 나서야 그 사랑을 깨달았으니 이 또한 멍청함 외에 무엇이겠습니까! 고함을 치시지 그랬습니까! 고막이 터지고, 놀래 자빠지도록 고함을 치시지 그랬습니까! 이렇게 우리처럼 고함 치시지 그랬습니까! 목을 놓아 꺼이꺼이 우시지 그랬습니까! 그렇게 미소만 남기고, 그렇게 열정만 남기고, 그렇게 희망만 남기고 그렇게 떠나서 이 멍청한 이들을 울리지 말고, 당신이 한 번 먼저 우시지 그랬습니까! 이제 우리는 어떡합니까? 지켜주는 바보도 없이, 멍청한 우리는 어떡합니까? 한없이 받기만 했던 사랑이 떠나고 나면 받아만 와서 제대로 주지 못 하는 이 못난 사람은 어디에 사랑을 돌려줍니까? 이제야 깨달은 우리의 사랑은 너무도 애닳아 차마 당신을 보낼 수가 없지만, 이제야 깨달은 우리의 무지는 너무도 안타까워 차마 당신을 놓을 수가 없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도 멍청할 순 없겠지요. 마지막 가는 길에도 울고 쓰러져 있을 수만은 없겠지요. 보내드리겠습니다. 보내드리지요. 다만 한 가지, 다음 번엔 당신이 멍청이 하십시오. 다음 번엔 내가 죽어라 사랑해주는 바보 할테니... 불면에 시달리며 맞은 아침은 괴롭기 짝이 없다.
오늘 네이버에서 안재환 씨의 죽음이 기사로 뜬 순간, 이런 말이 회자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명심합시다. 불매운동의 목적은 안재환 씨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불매운동의 결과가 안재환 씨의 죽음인 것도 아닙니다. 이 두 가지 명제를 착각하거나 혼돈시키지 맙시다. 아, 한 가지 더. 죽은 사람은 그 동안 현실 속에서 고통을 느끼고 자살을 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살자들은 그 고통 속에서 고통받는 자신 외에 다른 것을 살필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제 그 고통의 짊을 던지고 차안의 세계로 가고자 하는 이에게 이런 더러운 논쟁이 필요한 지 의문스럽고, 한 편으로 고인에게 죄송스런 마음도 있습니다. 고인의 평안한 죽음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이제 그만 죄많은 입을 닫는 게 옳지 않는가 주제넘게 생각해봅니다.
오늘 여름 계절학기의 마지막 시험이 있다.
2008년 8월의 학위수여식 전까지 나는 여전히 이 학교의 학부생으로써 자리하고 있겠지만, 오늘의 시험이 끝나면, 공식적인 나의 대학생 생활은 끝을 맺는다. 좋았는지, 나빴는지, 효율적이었는지, 비효율적이었는지... 알 수 없다. 재어보려 해도, 채 제대로 잴 수도 없겠지만, 나의 길다면 길었던,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웠던 대학 생활은 아마 오늘의 순간과 함께 끝을 맞으리다. 이제 기껏해야 내게 잘 해줬던 법대 아주머니에게 음료수 한 병 선물한다던지, 지도교수님께 그간의 감사를 표하는 정도가 남았을 뿐이다. 사실 얼마나 이 곳을 떠나고 싶었던가. 얼마나 졸업을 회피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보다 더 기다리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가슴 한 켠에 느껴지는 이 짠함은 뭐라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지나간 시간들, 사람들, 흔적들, 실수들, 후회와 아쉬움이 내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외친다고 해서 들릴리도 없고, 잡으려 한다 해서 잡을 수 있을 리 만무한 그것들의 지나간 자욱에는 오로지 공허함만이 나를 반기고 있을 뿐이다. 엄밀히 말해 고시생인 나는 졸업을 한다고 해서 이 곳을 떠날 형편은 아니다. 여전히 몸은 이 곳에 메어 있어야 하는 탓에 혹 왠 주제 넘는 감상이냐고 핀잔을 준다고 한들, 채 반박할 말이 딱히 없다. 그러나 어디 감정이란 게 논리로 갈무리되는 것인가. 그냥 서글프고 아쉽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무엇이 그렇게 내게 부정적인 감상만을 남기는 것일까? 채 제대로 된 배움이 없었다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남들이 목숨거는 학점 하나하나에 아쉬움을 갖지 않으면서도...좋은 친구들을 얻었고, 좋은 스승을 만나보기도 했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기회를 얻기도 했으면서... 잘 모르겠다. 혹 어쩌면 단지 내 지난 인생의 1/4이 어떻게든 흘러간 사실 그 자체가 아쉬운 건지도 모르겠다. 물 흐르듯 지나온 시간 동안...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주위의 벗과 후배와 룸메이트를 떠나 보내야 했고, 내 스스로의 인생의 굴곡을 헤아려야 했다. 그 와중에 발을 헛디디기도 하고, 상처를 부풀려 키우기도 했으며, 잦은 어리석음과 부족함으로 고생하곤 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지나온 대학의 길은 잘 포장되어 멋진 차들이 달리는 고속도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엄한 비포장도로나 투박한 국도였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그러나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속도감 대신 국도나 비포장도로에서 달리면서 나는 무언가를 얻었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내가 얻지 못 했다 하더라도 그 국도나 비포장도로는 내게 '무언가'를 주었을 것이다. 내가 아쉬운 것은 그 고속도로의 속도감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국도나 비포장도로를 선택한 것에 대한 아쉬움일까? 이것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둘 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둘 모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고속도로의 속도감을 느끼지 못 해 부러운 것 같기도 하고, 국도를 선택하고도 그 이점을 채 누리지 못 하는 어리석음에 아쉽기도 하다. 그 긴 시간을 지나오면서 이렇게도 답을 못 내는 것을 보면, 참 답답하지만... 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 물 흐르듯 지나온 시간 동안...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 잘 버텨온 그 시간 동안...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부 2003-13169, 수고했어. 안.녕.
오늘 롯데가 졌군요.
먼저 오늘 극성스런 분위기 때문에 수훈인터뷰조차 못했던 우리 히어로즈와 그 팬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승리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임경완 선수에 대해서 얘길 좀 하고 싶습니다. 오늘 임경완 선수 평소처럼 엄청난 양의 땀을 흘리고 있더군요.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떨고 있었고, 흔들리고 있더군요. 굳이 마음 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알 수 있을만큼, 가까이 있지 않아도 알 수 있을만큼... 누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난 우리 롯데팬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믿습니다. 단순히 오물을 투척한 '일부' 팬들뿐만이 아니라, 미니홈피에 갈 생각도 안 하지만, 롯데를 아끼는 나를 비롯한 일반 팬들조차도 그를 그렇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믿습니다. 실수하면, 소심하다고 소위 말해 '까고', 볼넷주면 (커맨드가 안 잡혀서) 장작모은다고 '까고', 우리 팬들이 하는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이기면 '내가' 이긴 것처럼 마냥 기뻐하고, 지면 내 '기대'와 '응원'과 '시간'을 배신했다고 까고 있지는 않던가요?...(유감스럽게도 제 모습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그것이 아쉬움의 발로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가지고 있는 작은 애정의 표현임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롯데를 사랑하지만, 그들은 바로 '롯데' 그 자체입니다. 과연 그들의 애정이 우리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 단언할 수 없을 겁니다. 그들이 바로 자신인 (매번 개인타이틀보다 가을의 야구를 이야기하는) 롯데를 아마 우리보다 더 사랑할 겁니다. 88885777과 같은 암흑과 같은 시절에 나와 같은 쭉정이 팬은 고개를 돌렸고, 사직엔 고작 수백의 관중뿐이었지만, 그들은 '꼴데'라는 비웃음과 비아냥 속에서도 롯데와 함께 뛰고 있었습니다. 전 롯데와 내가 함께 늙어가며, 함께 웃고, 울고 즐기기를 원합니다. 유망주는 내 동생같고, 손민한은 듬직한 형같으며, 이대호는 더할 나위없는 내 벗 같습니다. 나 역시 아쉽고 짜증납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과연 그들이 실수할 때, 특히나 롯데의 숙원과도 같은 마무리 자리를 맡은 임경완이 흔들릴 때, 내가 그에게, 내 아버지가 내게 해주듯이, 묵묵히 지켜보면서 힘을 주었던 적이 있는지 반성해봅니다. 하루하루에 일희일비하며, 하루하루에 그에 대한 나의 태도와 말을 바꾸었던게 아닌가 반성해봅니다. 나는 오늘 임경완 선수가, 롯데의 한 선수가, 한 야구선수가, 한 인간이 얼마나 자신에게 자괴감을 가지고 있을지 상상해보고 있습니다. 한 때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가졌던 이로서, 그 고통과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그런 그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손에 닿을 듯 합니다. 힘든 시절에도 롯데와 함께 해왔을 롯데 팬분들, 당신의 아쉬움, 당신의 애정을 부족한 나의 통찰로 채 다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조금만 침착해보고, 조금만 애정어린 눈빛'만'으로 한 야구선수를 응원해봅시다. 나는 오늘 한 야구선수가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야구를 통해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는 임경완 선수를 응원합니다. 반드시 이겨내시고, 반드시 3만 관중 앞에서 롯데의 상징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동가가 설치고 있다' -----------> '나라가 미쳐 날뛴다'
요즘 이 땅에 많은 말(說)들이 나돌고 있다. 제목 밑에 뚜렷이 써있는 저 말은 요즘 보수 언론, 정권에서 주야장천 해대는 말이다. 일견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일견 거짓일 수 있다. 인간은 거의 대부분 일정 정도의 정신병적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를 정신병으로 판단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나마 정신병은 정신병 전문의라는 전문적 직함을 가진 이들이 판단하게 함으로써, 일견 사회적 수긍을 얻는다. (물론, 정신병의 사회적 수긍은 전문의의 권위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정신병자를 경원시하기 때문이지만, 이는 주내용이 아니므로 생략한다) 그러나 사회 문제나 현상의 경우 이것이 과장된 것인지, 되려 과소한 것인지, 되려 정상인 것인지의 평가는 쉽게 할 수 없다. 아니, 누구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지 모르겠다. 혹자의 눈에 청계천에 몰린 촛불시위대는 '미쳐 날뛰는 군중'들로 보이겠지만, 혹자의 눈에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호일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단언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사람일 것이다. 왜냐, 단언할 수 없는 것을 단언하는 자는 무식하거나 사기꾼이거나 혹은 비이성적 신념(이성으로 쉽게 설명되지 않는 신념)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자 위의 제목 밑에 있는 굵은 글씨를 한 번 보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말 아닌가? 생각이 잘 나지 않나?(Hint : 1980년 5월 18일 즈음하여 전국 각지의 신문이 저와 유사한 말을 보도했다) '간첩들이 설치고 있다' ------------> '(간첩들의 선동으로) 광주가 미쳐 날뛴다' 자, 이제 떠오르는가? 그렇다. 유감스럽게도 저 말은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을 격하하면서 군부정권이 전국에 '광주사태'를 설명한 문언 그대로다. 광주에서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죽어갈 때, 내 고향 영남에서는 광주에 간첩이 들었단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다. 지역감정 탓이리라. 그리고 그들 중 나이드신 분들 중 다수는 지역감정 덕분에 아직도 그렇게 믿고 계신다. 그런 이들은 영남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전국 대부분이 그 말을 믿었으리라, 적어도 당시는. 그리고 그 덕택에 광주 전남도청 앞에서는 무고한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전국의 다른 사람들이 '냉/정/을/ 찾/자/고/말/하/는/순/간/에' 말이다. 오늘 우리는 그와 똑같은 현상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있다. 중도나 진보를 지지하는 몇몇 블로거들 역시 국민들의 행동에 대해 심각히 염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눈에는 황우석이 보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마도 몇몇은 황우석을 분명히 연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 나는 다른 면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그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이 일종의 Event성 사건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명백히 다르게 보고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은 결코 일종의 Event성 사건이 아니며, 고작 2개월 동안 다른 정권들이 정권 내내 할 실정들을 거듭해 온 이명박 정부에 대해 축적된 분노와 감정의 표출이다. 다만 그것이 광우병 사태를 기점으로 표출된 것일 뿐이다. (국민들은 2개월동안 오렌지 에피소드로 시작한 영어몰입교육을 기점으로, 강부자 고소영 내각, 0교시와 우열반, 대운하, 건보 민영화, 쇠고기 협상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을 모두 참아왔다. 실소만 자아내는 오렌지로 이미 혈압이 상승했고, 어처구니 없는 인사와 부자정부(사회에 있어서의 양극화), 교육에 있어서의 양극화를 인내했고, 심지어 국토를 두동강 내는 대운하에 대해서도 인내했다. 그러다 가족이 '아프면' 끝장나는 건보 민영화에서 들끓기 시작했고, 이제는 '아프게 해주겠다'는 쇠고기 협상에서 폭발한 것일 뿐이다.) 그들의 말처럼 광우병의 위험이 과대포장되어 넷상을 떠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대포장된 위험만이 지금 현재의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생각이라고 할 것이다. 게다가 과대포장되었다고 하는 위험의 내부에 우리는 Fact를 구축하고 있다. (지금 들끓고 있는 국민들이 하등의 Fact에도 의존하지 않고 단순히 과장된 위험에만 충동질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체 국민들을 어느 정도로 우습게 아는 것인가? 지금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0.1% 정도밖에 안 된다. 나름의 지식과 행동력을 갖추고 움직이고 있다. 얼마나 우월하기에 그들을 '과대포장된 위험'이나 '군중심리'에 충동질되었다고 말하는 것인가?) 더불어 알고 있는가? 황우석 사태때도 사람들은 황우석이 '만들어낸 거짓된' Fact에 열광했다. Fact 없이는 설명력도 없고, 정당성 역시 구축될 수 없다. 지금 이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바로 그 Fact다. 분명히 걸러내고 싶은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차후의 일이다. 우리가 우선해야 할 것은 쇠고기 재협상이지, 광우병 위험 중 과대포장된 부분을 걸러내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재협상이 결정된 뒤에도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국가 간 협상이 끝난 것을 재협상으로 이끌고 가는 것은 지금 결집된 민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무엇이 우선인가? 머리를 식히자고?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이 얼마나 졸속으로 이루어졌는지 모르고 하는 말인가?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에서 '과대포장된 위험이나 군중심리에 의해 사람들이 좌우되고 있다'라고 하는 말은 이 나라의 국민들을 무시하고 모독하는 언사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들을 지지해줄 때는 영명한 국민들이 자신들의 반대편에 서면 '우민'으로 변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블로거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전하고 싶다. 국민들은, 그것도 자신의 주말을 반납하면서 거리에 나와 움직일 정도의 국민들이라면, 충분히 어느 정도의 지식과 자신의 주체적인 사고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 점을 충분히 고려한 다음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 생각한다. 탄핵 때도 촛불시위가 많이 있었지만, 효순이 미선이 사건때는 무려 10만이 넘는 인원이 참가했었지만, 선동이라는 말이 쓰여지지 않았다. (물론 조중동 열외) 첨언) 사실 필자의 견해는 이것보다 좀 더 나아간다. 나는 심지어 어린 학생들이 나온다한들 그게 무엇이 해로운지 인식하지 못하겠다. 가끔 예전에 썼던 글들을 돌이켜보면, 나의 글이나 언행, 행동이 모자라고 부족해서 부끄러울 때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그 때일 뿐, 지금은 그 부끄러움을 바탕으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 애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학생들에게 이런 경험은 돈으로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발한다. 우리나라처럼 척박한 교육 환경에서 '봉사활동 이후에 시위에 참가할 거에요'라고 말한 학생은 가히 대단해보일 정도다. 시위에 참가한다는 것, 그것이 축제의 형태든 집회의 형태든, 그 자체로 그 학생은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경험하고 있는데, 무엇이 해롭고, 무엇이 문제가 될지 의문스럽다. 당신의 해맑은 미소를 좋아합니다. 언제부턴가 나는 해맑은 미소를 잃었다. 호탕한 웃음이나 소위 썩소라고 일컫는 비소는 여전히 내 얼굴 위에 맴돌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그 어린 날의 해맑은 미소는 사라졌다. 해맑은 미소는 아름답다. 설령 얼굴이 아름답거나 잘 생기지 않다고 해도, 그 사람의 깨끗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난다는 해맑은 미소는 원빈이나 장동건, 김태희의 썩소보다도 더 사람을 끄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대학교에 오고 나서, 머리를 단지 주어진 자료나 지식의 암기나 습득에만 몰두하지 않고, 이리저리 밖으로 굴려보면서, 나는 내 능력 밖의 어려운 일들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성과였으나, 워낙에 크고 어려운 일들인데다, 내 능력은 보잘 것 없던 탓에, 내 얼굴에 뚜렷이 남아 있던 해맑은 미소는 점점 사라지고, 비소 따위만이 거울 속에서 나를 반길 뿐인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예전은 물론이고 지금도 나는 줄곧 ‘행복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꿈꾸어 왔다. 인간은 행복해야 하고, 사회도 그 행복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감히 나의 부족한 깜냥으로는, 상상의 범주 밖에 있는 것들에 대한 깊지 못한, 소리만 요란한 고민과 걱정을 해왔다. 그렇게 해서 해맑은 미소를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어린 후배들의 얼굴에서 그 해맑은 미소를 본 듯싶다. 아니, 어쩌면 나도 모르게, 그네들의 얼굴 속에서 해맑은 미소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홍세화씨를 만나서 점심식사를 한 날, 홍세화씨가 내게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었다. 파리에서 시위가 있어서, 담당자들이 대책회의를 하는 그 순간, 상급자들을 기다리던 파리 경찰서장은 한 권의 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책은 시집이었다고 한다. 파리 경찰서장은 무슨 생각으로 시집을 손에 쥐고 시위를 진압(혹은 협상)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까? 나는 그 심경이 너무도 궁금하다. 어쩌면 그가 내게 현실의 삶이 아무리 고난하고 어렵더라도 당신의 행복과 당신의 해맑은 미소를 잃지 말라고 말해주기를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세상은 만만치 않고, 몇 년 더 먼저 세상을 경험한 내게도 어렵고 고단한 이 생이, 이제 막 세상과 맞닿게 되었는데, 새로운 물결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아야만 하는 새내기와 저학번들에게는 더더욱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좋아라하는 후배들이여, 지금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라. 그리고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라. 그것이 너의 얼굴이며, 그것이 너의 삶이다. 세상이 고되더라도, 자신이 가진 행복과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길 바란다. 세상과 맞서는 가운데, 오롯이 자신의 해맑은 미소를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나도, 너희들도.
난 가끔 기분이 울적하거나 약간 센치해질 때, 내게 글재주가 없다는 사실에 많이 실망하곤 해. 지금 내 기분을 시 같은 일상의 나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법한 별세계의 방법으로 표현해낼 수 있다면.... 이라는 생각을 그럴 때면 꼭 하곤 해.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게 없던 시재나 문재가 단박에 생기는 즐거운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말야.
오랜만에 기쁜 마음으로 즐거운 과거를 떠올렸는데, 상상의 날개를 벗어던지자 마자 내가 있는 지금의 모습이 그 즐거운 기억과 너무나도 달라서 마음이 쓰라려. 조금만 더 그 때의 과거에서 머물다 올걸...하고 말야.
어제 한 TV쇼에서 연예인 하나가 그런 얘길 하더라고. 엄마는 부엌에서 요리하고, 아빠는 마루에서 뉴스보고, 자식은 때맞춰 학교다녀왔다고 하는 그런 여느 흔한 가정집에서 나는 소리가 그리웠다고...
그 덕분에 나도 잠시 그 즐거웠던 과거의 한 순간을 회상하게 되더라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다녀왔습니다." 라는 인사를 하면, 꼭 부엌에서 엄마가 나와서 "잘 다녀왔니? 무슨 일은 없었고?" 라고 물으시지. 엄마가 없는 집, 그래서 내 손으로 열쇠를 열고 들어오는 집은 너무나 허전했어. 이윽고 난 "엄마, 배고파."라고 마치 대여섯살 먹은 어린애마냥 엄마를 보채기 시작하고, 엄마는 때론 나긋하게 때론 준엄하게, "아빠 곧 오시잖아."라고 말씀을 하시지. 집 안에는 흰 밥 익어가는 내음과 고등어 굽는 소리, 된장이 부글부글 끓는 모습이 내 코와 귀와 눈을 즐겁게 하지. 한 차례 더 투덜댈라치면, 여동생이 귀가하고, 인내심이 다다를 지경에 이르면, 아빠가 "어, 우리 아들!"하며 들어오시지. 그렇게 맞는 저녁 식사는 굳이 소고기에 회가 없더라도, 된장 하나로도 내 배를 채우고, 내 마음을 채우고도 남았지. 그 때는 그걸 채 다 알지 못했지만 말야. 지금 난 내 손으로 아무도 없는 방의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반기는 엄마의 목소리도, 향긋한 저녁 내음도, 기다려야만 하는 아빠도 동생도 모두 있지 않지. 그게 꽤 쓸쓸해. 아직 가을도 채 안 되었는데 말야.
나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지만, 인간이 풍기는 각종 오감을 느끼기는 너무도 어려운 세상이야. 물질주의니 뭐니 하는 어려운 말을 이번만은 제쳐두더라도, 난 주위의 여러 친구들에도 충분한 만족을 구하지 못 한 거 같아. 괜히 그 친구들에게 짐을 지우고, 죄를 씌우는 거 같아 미안하지만 말야.
사실 며칠 전에 이런 감상 없이 처음 외국 여행을 가시는 부모님께 편지를 적었는데, 오늘 아침에 괜시리 엄마가 좋아하는 문자가 떠올라 한 번 보냈지. 무척 기뻐하시더라구. 내가 방에 들어올 때 나를 반겨주던 엄마를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순간, 엄마는 문을 열고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해줄 아들을 기다린 게 아닐까. 그냥 이런저런 생각들이 드네.
오랜만에 너무 너무 집에 가고 싶어. 보통 이런 기분은 흔치 않은데.. 집에 가서 "엄마, 아들!"이라고 외치고 싶어. 부글부글 된장 끓는 소리도 듣고 싶고, 오랜만에 만나 끝이 없는 여동생의 지루한 이야기도 듣고 싶어. 귀여운 우리 아빠랑 아침 댓바람에 등산에 올라가며, 이런저런 얘기도 듣고 싶고, 가족끼리 벚꽃구경이라도 가고 싶어. 하고 싶은 게 많은데, 해야 할 일이 내 발목을 잡고 있네.
쓸데없이 길기만 한 투정글이 되어 버렸네. 미안. 오늘은 그냥 말하고 싶었어. 부모님께 이런 말 할 수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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