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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의 강점은 무정형성이며, 다주체성(모든 이가 주체라는 의미), 비폭력성과 여론입니다.
그러나 이 강점은 장점인 동시에 촛불시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에 언제나 두려움과 염려심을 가져왔습니다. 논의를 관통하는 전제로서, 연대는 어려우나, 분열은 쉽다는 점을 지적하고 개진합니다. 첫째로 무정형성은 자율성에서 비롯되어 촛불시위 참여자들의 다원적인 생각을 잘 담아왔습니다만, 결정적으로 목표와 목적, 다음 단계 설정에 필요한 의사 결정에 있어서 장애를 가지고 왔습니다. 더불어 시위 자체가 연대이기 때문에, 앞의 전제에 따르면, 분열에 대한 끝없는 걱정으로 인해서 제대로 된 의사 결정을 구축하기 보다는 두리뭉술한 결정만을 내리고, 세부결정 사항은 임의대로 이뤄지게 놔둘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는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저해시키고, 시위 자체의 역량을 결집시키기 보다는 여러 방향으로 낭비할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여론입니다. 여론은 촛불집회의 기반으로서, 현재의 촛불집회가 이렇게 힘을 얻을 수 있는 기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론은 언제나 가변적이라는 점에서, 든든한 기반이기가 어렵고, 따라서 우리는 이 여론의 향방에 끝없이 주시해야만 하며, 결정적으로 '가상적인 여론의 향방'에 따라서 우리의 의사 결정을 제약받는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게 됩니다. 지금 현재의 여론이 촛불집회를 지지하는 것은 두 가지,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촛불집회의 비폭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자 중 하나, 특히 그 중에서도 시위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비폭력이 흔들리게 되면, 언제라도 양비론이 등장하여 여론을 흔들 수 있고, 이는 시위와 집회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셋째, 다주체성입니다. 다주체성은 모두가 공평하게 동등하게 참여하는 과정에서, 시위대 자체의 합리성을 도출해내는 데 크게 기여해 왔습니다. 그러나 주체마다 연대를 하는 목적과 생각, 동인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이 다주체성으로 인해서 시위나 집회의 성격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다주체성을 비판하거나 부정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다주체성의 지나친 강조로 인해서, 집회나 시위의 주관자 내지는 집행의 편의를 가져올 수 있는 집단을 형성하는 것에 대한 시위대 자체의 부정적인 시각이 생겼고, 이를 통해 여론에서도 그런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사고를 잠재적으로 가지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향후 시위나 집회의 발전방향을 논의함에 있어서 부득이하게 이런 집단을 형성하게 될 경우(10만이 다 모여서 발전방향을 정할 수는 없으므로) 얼마든지 조중동 등에서 이를 좌빨이나 선동단체로 몰아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촛불집회의 강점은 어느새 촛불집회의 발전을 저해하고 발목을 잡는 기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촛불집회에 대해 지나치게 순수성(정치적인 부분에서 더더욱)을 강조함으로써, 우리 스스로가 족쇄를 채워버렸기 때문입니다. 광장과 집회는 정치성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음에도 스스로 정치성을 배제하는 듯 하게 출발해버렸고, 정당성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이 순수성을 이용했기에, 우리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치성을 드러내게 될 경우 이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편견과 싸워 이겨내야만 합니다. 어렵고 힘든 일일지라도, 이제 촛불집회의 정치성을 드높일 수 있어야 합니다. 더불어 우리가 집회를 통해서 무엇을 원하는지 목적과 목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의 행보에 대해 인터넷이라는 열린 광장에서 토론하고 민의를 모을 필요가 있습니다. 장마철이 오고 있으며, 정부는 강경책에서 유화책으로 언제라도 돌입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얼마든지 양비론 등으로 여론몰이를 할 수 있습니다. 동력을 집결시키고, 역량과 에너지가 외부로 허투로 유출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축제를 하고 있지만, 동시에 정치 투쟁을 하고 있음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전자만을 강조하여 정당성을 얻었지만, 후자를 부정하는 즉시 이 촛불집회를 유지하는 동력과 방향을 잃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만 합니다.(시위장에서는 이명박 아웃을 외침에도, 온라인에서는 이 정치성을 부정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저는 이 촛불집회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자 했으며, 지켜볼 것입니다만,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욱 더 유연한 자세라고 할 것입니다. 저들은 단지 침묵하기만 하면 되고, 우리는 부단히 움직여야만 합니다.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의 대결에서 알리는 포먼의 강펀치를 정확한 가드로 막으며 포먼이 지치기만을 기다리다 체력이 떨어지자 그 때부터 공세에 나서 승리를 거뒀습니다. 우리의 체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모르겠고, 동력이 무한한지 의문스러운 저로서는, 알리처럼 가드만을 하는 현 정권이 두렵고 또 국민의 동력에 의문을 갖는 제 자신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꼭 이기고 싶습니다. 반드시 승리합시다. 농식품부에서 미국 측에 쇠고기 30개월 이상 부분에 대해 수출중단을 미국에 요청했다고 한다. 오늘은 그동안 생각해왔던 현정부의 외교와 관련하여, 기존의 정부들이 해왔던 외교전략, 정책과 대한민국의 외교 정세를 바탕으로 평가해 보고자 한다. 1. 동북아의 정세 동북아는 세계에서 가장 특이하고 주목할만한 지역이다. 이 동북아 정세에 개입하고 있는 중국-러시아-북한-한국-일본-미국, 이 6개국은 전 세계 10대 군사강국으로 평가되고 있다. 더불어 중국은 떠오르는 경제대국이자 매년 18%가량의 군비증강을 이뤄내고 있는 한 해 45조 이상의 군사비를 지출하는 군사강국이며, 러시아는 냉전시대의 양대산맥으로, 경제 발전이 더뎌 군사력이 쇠퇴했으나, 최근 천연 가스 등을 비롯한 유전 사업의 발전으로 경제강국, 군사강국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북한은 핵 등 비대칭전력이 극도로 강한 전 세계에서 가장 예측불가능한 국가로, 외교적으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국가이다. 일본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군사강국, 경제강국으로, 일본이 4개를 보유하고 있는 8-8(함정-헬기)함대는 그 중 하나만으로도 대한민국의 해군을 능가한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미국은 중국의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는 군비에 반발하지만, 한 해 450조 이상을 군비로 쓰는 최강대국이다. (게다가 이라크, 아프간 파병은 제외한 금액이다) 대한민국의 외교적 상황이 보이는가? 동북아 지역은 경제적으로 세계 최고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지역이라, 경제전쟁의 접전지이면서, 군사적으로 가장 치밀하면서도 가장 암묵적인 분쟁이 이뤄지고 있는 뜨거운 감자 중의 하나이다. 기존의 북한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림팩으로 대두되는 미-일 동맹에, 최근 계속된 군사훈련을 통해 견고해지는 중-러 동맹의 대립까지... 이런 상황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갈 길은 얼마나 멀고도 험한 것이던가. 예전에 누군가가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10만 과학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했으나, 어쩌면 더 필요한 것이 1천의 정예 외교요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만큼 대한민국의 외교적 상황은 특별하다. 2. 동북아 속의 대한민국 외교(예전-국민의 정부까지) 그 간의 대한민국의 행적은 어떠했을까? 오랜 예전부터 YS의 문민정부까지 이르는 시기는 오로지 미국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외교의 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특이할만한 일은 공산국가들의 붕괴와 발맞추어 북한과 대화를 어느 정도 시작했다는 점과 대만을 버리고 중국과의 외교 통로를 개척하는 것 정도가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때까지 집권세력들의 성향으로 일본과의 외교는 당연한 귀결이었기에 특이한 점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 외의 모든 외교 행적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대미외교의 부산물 정도에 불과했다. (사실 중국과의 외교 개통도 중국의 UN가입이라는 미국의 조치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기는 하지만) 그런데 DJ정권 이후로 대한민국의 외교 행적은 다소 상이해졌다. 그 이전까지 동북아정세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외교가 ‘only 미국’이었다면, DJ이후로는 외교의 축이 다극화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중국과의 외교 비중도 다소 커졌고, 햇볕정책 이후로 ‘통미봉남(미국과 통하고 남쪽을 봉한다)’의 북한과의 외교 비중은 상상초월의 수준으로 바뀌었다. 3. 동북아 속의 대한민국 외교(참여정부) 직전의 노무현 정권은 어떨까? 참여정부 초기에는 중국과의 관계 설정이 무엇보다 외교의 핵심이었다고 생각된다. 참여정부 초기에는 대한민국의 가장 친밀한 친구였던 미국이 다소 의아할 만큼(중국은 미국의 잠재적 주적) 중국과 친밀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변화하는 동북아의 정세를 밀접하게 고려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급격히 부상하는 중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동북아 정세의 다극화를 고려하여 기존의 대미외교에만 얽매어 있던 한국 외교의 유연성을 부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북전략에서는 승계 여부에 논란이 일었던 햇볕정책을 그대로 승계하여, 북한과의 친밀한 관계를 꾸준히 유지함으로써, DJ시절에 이룩했던 화해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고자 노력했고, 이어서 화해의 분위기라는 틀 위에서 협력이라는 새로운 분위기를 창출하고자 노력했다. 그 와중에 서해교전과 미사일 실험, 심지어 북핵실험 문제까지 붉어져 나왔지만, 대북정책의 기조는 흔들림이 없었다. (조중동 등 일부는 이를 안전불감증이라고 하지만, 북한과의 친밀한 관계가 가져온 결과물(소위 북풍 등의 안보문제로 국민의 의사를 왜곡시키는 등의 문제가 발생않게 됨)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런 틀이 있었기에, 북한이 벼랑끝 전술로 내놓은 북핵 문제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평화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참여정부는 동북아 균형자론이라는 이름으로 동북아 정세에서 한국이 균형자적 입장을 띔으로서, 외교적 우위를 얻을 수 있는 전략을 제시했다. 쉽게 말하자면, 기존의 동북아 정세가 미,일 - 중,러 식의 경쟁 양상을 띄고 있을 때, 이제까지 한국은 대미전략에 치우쳐 미,일(한) - 중,러(북) 식의 양상을 창출해냈다. 그런데 동북아 균형자론과 햇볕정책을 통한 친북한 전략, 그리고 친중국 전략을 통해 동북아 정세에서 한국은 미,일 - 한국 - 중,러,북 식의 양상을 창출해냄으로써, 6자회담을 이끌어내는 계기를 만들어냈고, 동시에 6자회담에서 균형자이자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통해 외교적 지분을 스스로 창출해냈고, 얻어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은 동북아 외교 정세의 균형자적 지분을 얻어냈다고 생각한다. 균형자라는 말이 단순히 봉건제 시절의 ‘중앙권력’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에 해당하지는 않을 것이나, 대립하는 양대세력 사이에서 무게의 균형을 조절할 수 있는 지분을 가진 ‘캐스팅보트’의 의미라면 당시 우리는 충분히 그 역할을 수행해냈다고 생각한다. 이후, 한미FTA와 함께 참여정부는 취임 초기와의 외교노선과는 다소 상이한 외교전략을 취하게 된다. 당시 중국이 대한민국과의 FTA를 고대했던 점을 고려하면, 중국과의 fTA를 포기하고, ‘말많은’ 미국과의 fTA를 계획하고 추진한 배경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언급하기 어려운 것이, 미국과의 FTA 추진이 미국에서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이었는지, 동북아 정세와 관련하여 외교, 국방적 이익을 도모한 것이었는지 쉽사리 단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참고로 필자는 한미FTA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럼에도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한미관계가 급속히 발전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뉴욕포스트는 노무현은 예측할 수 없는 리더였지만, 그의 시절에 동맹이 강화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다만, 놀라운 점은 중국의 반응인데, 한미 FTA 등을 비롯한 대미동맹의 강화에도 중국이 크게 반응을 보이거나 걱정한 흔적이 없다는 점이다.(이명박의 친미 성향에 당선인 시절부터 중국이 걱정했던 것과 비교하면..) 그 동안 쌓아왔던 친중국 전략의 결실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경우, 참여정부 시절의 주요 외교대상국은 아니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정치인들의 독도 망언으로 시작해, 왜곡된 역사교과서와 독도 조사 사업까지 터지면서 한일외교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점이 어떤 문제를 일으켰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동아시아 외교의 두 축은 미국과 중국이다. 한-미 동맹은 반세기 이상을 자랑하는 기반을 갖추고 있고, 중국에게는 침략 역사가 있고, 영토 분쟁이 있는 일본보다 한국이 보다 편한 외교 상대국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본과의 외교는 한국으로서는 급한 상황이 아니었다. 도리어 일본의 경우, 6자 회담에서 북한이 가장 꺼리는 대화 상대국으로 찍혀, 동북아 정세에서 가장 손해를 본 국가가 되었다. (이런 점에는, 미국의 의사에 일본이 극단적인 반발을 표할 리 없다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의 외교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연출해낸 참여정부 시절의 외교정책은 합격점 이상의 점수를 받을만하다. 동북아의 중추인 미국, 중국 양자 모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가장 예측 불가능한 북한 역시 잘 다룸으로써, 동북아 외교 정세에서 큰 수확하였기 때문이다. 4. 현재의 대한민국 외교 상황 이명박 대통령(이하 이명박)의 경우, 친미성향이 경선 시절부터 우려되었다. 이에 당선인이 되고 난 이후, 중국은 한국을 외교상대국 지위를 한 단계 더 상승시키려는 계획을 마련하기도 했다. 북한의 경우는, 지속적으로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대북전략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미국과 일본은 한쪽에서 웃음을 감추고 있었다. 4.1 대북외교 북한과의 분쟁, 알력은 이미 예상된 결과였다. 북한은 줄곧 한나라당과 이명박에 우려를 표해왔고, 한동안 보기 어려웠던 비난방송과 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개성공단을 비롯한 휴전선 이북에서 공무원들은 모두 쫓겨나기에 이르렀고, NLL을 둘러싸고 조용할 날이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이런 와중에 북한은 가장 우려했던 ‘통미봉남’ 전략을 다시 시행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한국이 각종 조건을 달며 식량지원을 등한히 하는 사이에, 미국은 북한에 직접적으로 식량지원을 하게 되었고, 북한 역시 맘에 안 드는 한국이라는 친구에 구태여 손 벌릴 필요가 없게 되었는데, 이는 식량지원을 카드로 외교적 우위를 꾀하고자 했던 한국의 대북전략에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왔다. (정권이 베스트 프렌드라고 말하던 미국에게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4.2 중국외교 중국과의 외교 역시 문제가 많다. 중국이 이명박에 대해 깊은 우려를 해왔다는 점은 이미 언급했다. 이명박의 친미 성향은 DJ와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쌓아 온 한-중 외교의 성과를 흔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중국으로서는 동북아에서 입지를 굳히기 위해, 한국과의 친밀한 외교가 필수적이다. 특히 올해 중국은 말 많고 탈 많은 국제적 행사인 올림픽을 북경에서 치르기에 더욱 필수적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명박은 대북외교에서 DJ, 노무현 정권과는 다른 접근법을 들고 나왔고, 중국은 이 정권이 과거와는 다름을 인식했을 것이다. 이후 이명박은 첫 순방국으로 미국-일본을 정하는 한편, 쇠고기 협상을 타결하고, FTA 비준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중국이 우려하던 친미적 성향을 유감없이 뽐냈다.(대북강경책의 와중에 친미정책이 펼쳐졌으니, 중국의 입장이라면?) 당시 중국은 티벳 사건으로 세계적으로 압박을 받는 상황이라 외교 상대국이 절실했었다. 아마도 한국과 일본이 그 타깃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후진따오는 일본을 선택했다. (참고로, 중-일은 올해 초, 농약만두와 일본 기자의 스파이 파동으로 반일-반중 감정이 극도로 치닫는가 하면, 후진따오의 일본행을 중국에서는 극도로 만류했었다고 한다) 아마도 참여정부였다면, 외교적 고립에 빠질 수 있었던 중국의 순방국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구원투수로 등장할 한국은 중국과의 외교에서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지 않았을까? 4.3 일본외교 이명박은 일본에서 천황을 천황이라 칭하고(이제껏 일왕이라 칭함), 목례를 하면서, 과거의 일을 덮어두자는 식의 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었다. 그의 실용에 따르면, 물의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는 반(反)실용이라고 할 것이다. 참여정부의 외교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일본에 굳이 목 매달릴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명박은 스스로 일본으로 건너가, 우리와 외교 관계를 돈독히 해줄 것을 요청했다. 쉽게 말해, 우리가 가지고 있거나 적어도 뺏기지 않았던 주도권을 일본에게 넘겨준 것이다. 그것도 언제라도 꺼내어 일본의 외교 전략에 딴죽을 걸 수 있는 역사 문제, 독도 문제라는 히든카드마저 넘겨준 채 말이다. 4.4 미국외교 미국과의 외교는 굴종의 외교라는 말 외에 더할 말이 없다. 졸속으로 치룬 쇠고기 협상은 말할 나위도 없고, 교황이 미국에 방문하는 시점에 같이 방문하는 ‘뇌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방문일자로 미국에 과연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왔을지도 의문스럽다. 아니, 어찌 생각해보면, 미국과 미국민에 큰 영향을 못 행사하고 온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4.5 동북아 정세의 변화 참여정부 시절, 한국은 캐스팅 보트를 쥔 국가였다. 미,일-한-중,러,북 상황에서 미국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통로로 이용하기에 유용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 일본에 보다 친밀한 모습을 보여, 미,일,한-중,러,북 식의 양상이 된다면, 그리하여 한국을 거치고 얘기하는 것이나 거치지 않고 직접 얘기하는 것이나 동일하다면, 중국이나 북한이 구태여 한국을 통로로 거칠 필요가 없다. 미국 역시 한국의 존재를 크게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된다. (중-한 관계가 중-미 관계보다 더 돈독하다면, 중국으로서는 직접 껄끄러운 미국을 상대하는 것보다 미국과 친하면서 자신과도 친한 한국에게 입장을 설명하여 양자의 협상을 이끌어내는 촉매로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역학에도 이명박 정부는 후자의 경우를 택했고, 그 결과로 중국은 대화상대자로 한국이 아닌 일본을 택했고,(일본이 한국보다 미국과 친밀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동북아에서의 지분도 일본이 크니, 중국 입장에서는 중-한, 중-일 관계가 동등하다면, 한국보다 일본이 더 매력적인 상대국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미 속내를 다 보인 한국의 사정을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더불어 북한은 중국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상태에서, 한국이 아닌 미국과의 대화에 전력투구를 하며, 어렵게 구축해놓은 다자회담(6자회담)의 방식이 아닌 북-미 양자회담의 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 어렵게 유지해온 ‘캐스팅보트’의 지위와 지분을 상실했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전략은 거의 재앙 수준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냉전 속에서 스위스가 취했던 외교적 이익을 꿈꾸어야 했음에도, 스스로 그 역할과 지위를 차버렸다. 덕분에 대한민국이 동북아 외교 정세에서 얻어낼 발언권은 현격히 떨어졌고, 지위는 ‘대한민국’에서 ‘미국 측’으로 격하되었다. 외교란, 국가 간의 인간관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계산이 주가 되기에, 우정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사회생활 속에서 흔히 하는 인간관계 정도로 이해한다면, 그 속에서 신뢰를 쌓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한편으로 신뢰를 잃는 것이 얼마나 쉬운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지금의 지위를 유지하는 일도 얼마나 벅찬 것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우리는 어렵게 쌓아왔던 신뢰를 스스로 차버렸고, 어렵게 일구어낸 지위와 지분을 스스로 포기했다. 이제 앞으로 스스로 포기했던 것들을 다시 쌓아가야 하는데, 얼마나 어렵고 힘든 과정이 될지 걱정과 아쉬움이 가득할 뿐이다.
오늘 롯데가 졌군요.
먼저 오늘 극성스런 분위기 때문에 수훈인터뷰조차 못했던 우리 히어로즈와 그 팬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승리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임경완 선수에 대해서 얘길 좀 하고 싶습니다. 오늘 임경완 선수 평소처럼 엄청난 양의 땀을 흘리고 있더군요.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떨고 있었고, 흔들리고 있더군요. 굳이 마음 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알 수 있을만큼, 가까이 있지 않아도 알 수 있을만큼... 누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난 우리 롯데팬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믿습니다. 단순히 오물을 투척한 '일부' 팬들뿐만이 아니라, 미니홈피에 갈 생각도 안 하지만, 롯데를 아끼는 나를 비롯한 일반 팬들조차도 그를 그렇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믿습니다. 실수하면, 소심하다고 소위 말해 '까고', 볼넷주면 (커맨드가 안 잡혀서) 장작모은다고 '까고', 우리 팬들이 하는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이기면 '내가' 이긴 것처럼 마냥 기뻐하고, 지면 내 '기대'와 '응원'과 '시간'을 배신했다고 까고 있지는 않던가요?...(유감스럽게도 제 모습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그것이 아쉬움의 발로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가지고 있는 작은 애정의 표현임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롯데를 사랑하지만, 그들은 바로 '롯데' 그 자체입니다. 과연 그들의 애정이 우리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 단언할 수 없을 겁니다. 그들이 바로 자신인 (매번 개인타이틀보다 가을의 야구를 이야기하는) 롯데를 아마 우리보다 더 사랑할 겁니다. 88885777과 같은 암흑과 같은 시절에 나와 같은 쭉정이 팬은 고개를 돌렸고, 사직엔 고작 수백의 관중뿐이었지만, 그들은 '꼴데'라는 비웃음과 비아냥 속에서도 롯데와 함께 뛰고 있었습니다. 전 롯데와 내가 함께 늙어가며, 함께 웃고, 울고 즐기기를 원합니다. 유망주는 내 동생같고, 손민한은 듬직한 형같으며, 이대호는 더할 나위없는 내 벗 같습니다. 나 역시 아쉽고 짜증납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과연 그들이 실수할 때, 특히나 롯데의 숙원과도 같은 마무리 자리를 맡은 임경완이 흔들릴 때, 내가 그에게, 내 아버지가 내게 해주듯이, 묵묵히 지켜보면서 힘을 주었던 적이 있는지 반성해봅니다. 하루하루에 일희일비하며, 하루하루에 그에 대한 나의 태도와 말을 바꾸었던게 아닌가 반성해봅니다. 나는 오늘 임경완 선수가, 롯데의 한 선수가, 한 야구선수가, 한 인간이 얼마나 자신에게 자괴감을 가지고 있을지 상상해보고 있습니다. 한 때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가졌던 이로서, 그 고통과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그런 그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손에 닿을 듯 합니다. 힘든 시절에도 롯데와 함께 해왔을 롯데 팬분들, 당신의 아쉬움, 당신의 애정을 부족한 나의 통찰로 채 다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조금만 침착해보고, 조금만 애정어린 눈빛'만'으로 한 야구선수를 응원해봅시다. 나는 오늘 한 야구선수가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야구를 통해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는 임경완 선수를 응원합니다. 반드시 이겨내시고, 반드시 3만 관중 앞에서 롯데의 상징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동가가 설치고 있다' -----------> '나라가 미쳐 날뛴다'
요즘 이 땅에 많은 말(說)들이 나돌고 있다. 제목 밑에 뚜렷이 써있는 저 말은 요즘 보수 언론, 정권에서 주야장천 해대는 말이다. 일견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일견 거짓일 수 있다. 인간은 거의 대부분 일정 정도의 정신병적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를 정신병으로 판단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나마 정신병은 정신병 전문의라는 전문적 직함을 가진 이들이 판단하게 함으로써, 일견 사회적 수긍을 얻는다. (물론, 정신병의 사회적 수긍은 전문의의 권위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정신병자를 경원시하기 때문이지만, 이는 주내용이 아니므로 생략한다) 그러나 사회 문제나 현상의 경우 이것이 과장된 것인지, 되려 과소한 것인지, 되려 정상인 것인지의 평가는 쉽게 할 수 없다. 아니, 누구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지 모르겠다. 혹자의 눈에 청계천에 몰린 촛불시위대는 '미쳐 날뛰는 군중'들로 보이겠지만, 혹자의 눈에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호일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단언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사람일 것이다. 왜냐, 단언할 수 없는 것을 단언하는 자는 무식하거나 사기꾼이거나 혹은 비이성적 신념(이성으로 쉽게 설명되지 않는 신념)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자 위의 제목 밑에 있는 굵은 글씨를 한 번 보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말 아닌가? 생각이 잘 나지 않나?(Hint : 1980년 5월 18일 즈음하여 전국 각지의 신문이 저와 유사한 말을 보도했다) '간첩들이 설치고 있다' ------------> '(간첩들의 선동으로) 광주가 미쳐 날뛴다' 자, 이제 떠오르는가? 그렇다. 유감스럽게도 저 말은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을 격하하면서 군부정권이 전국에 '광주사태'를 설명한 문언 그대로다. 광주에서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죽어갈 때, 내 고향 영남에서는 광주에 간첩이 들었단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다. 지역감정 탓이리라. 그리고 그들 중 나이드신 분들 중 다수는 지역감정 덕분에 아직도 그렇게 믿고 계신다. 그런 이들은 영남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전국 대부분이 그 말을 믿었으리라, 적어도 당시는. 그리고 그 덕택에 광주 전남도청 앞에서는 무고한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전국의 다른 사람들이 '냉/정/을/ 찾/자/고/말/하/는/순/간/에' 말이다. 오늘 우리는 그와 똑같은 현상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있다. 중도나 진보를 지지하는 몇몇 블로거들 역시 국민들의 행동에 대해 심각히 염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눈에는 황우석이 보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마도 몇몇은 황우석을 분명히 연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 나는 다른 면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그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이 일종의 Event성 사건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명백히 다르게 보고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은 결코 일종의 Event성 사건이 아니며, 고작 2개월 동안 다른 정권들이 정권 내내 할 실정들을 거듭해 온 이명박 정부에 대해 축적된 분노와 감정의 표출이다. 다만 그것이 광우병 사태를 기점으로 표출된 것일 뿐이다. (국민들은 2개월동안 오렌지 에피소드로 시작한 영어몰입교육을 기점으로, 강부자 고소영 내각, 0교시와 우열반, 대운하, 건보 민영화, 쇠고기 협상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을 모두 참아왔다. 실소만 자아내는 오렌지로 이미 혈압이 상승했고, 어처구니 없는 인사와 부자정부(사회에 있어서의 양극화), 교육에 있어서의 양극화를 인내했고, 심지어 국토를 두동강 내는 대운하에 대해서도 인내했다. 그러다 가족이 '아프면' 끝장나는 건보 민영화에서 들끓기 시작했고, 이제는 '아프게 해주겠다'는 쇠고기 협상에서 폭발한 것일 뿐이다.) 그들의 말처럼 광우병의 위험이 과대포장되어 넷상을 떠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대포장된 위험만이 지금 현재의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생각이라고 할 것이다. 게다가 과대포장되었다고 하는 위험의 내부에 우리는 Fact를 구축하고 있다. (지금 들끓고 있는 국민들이 하등의 Fact에도 의존하지 않고 단순히 과장된 위험에만 충동질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체 국민들을 어느 정도로 우습게 아는 것인가? 지금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0.1% 정도밖에 안 된다. 나름의 지식과 행동력을 갖추고 움직이고 있다. 얼마나 우월하기에 그들을 '과대포장된 위험'이나 '군중심리'에 충동질되었다고 말하는 것인가?) 더불어 알고 있는가? 황우석 사태때도 사람들은 황우석이 '만들어낸 거짓된' Fact에 열광했다. Fact 없이는 설명력도 없고, 정당성 역시 구축될 수 없다. 지금 이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바로 그 Fact다. 분명히 걸러내고 싶은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차후의 일이다. 우리가 우선해야 할 것은 쇠고기 재협상이지, 광우병 위험 중 과대포장된 부분을 걸러내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재협상이 결정된 뒤에도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국가 간 협상이 끝난 것을 재협상으로 이끌고 가는 것은 지금 결집된 민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무엇이 우선인가? 머리를 식히자고?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이 얼마나 졸속으로 이루어졌는지 모르고 하는 말인가?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에서 '과대포장된 위험이나 군중심리에 의해 사람들이 좌우되고 있다'라고 하는 말은 이 나라의 국민들을 무시하고 모독하는 언사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들을 지지해줄 때는 영명한 국민들이 자신들의 반대편에 서면 '우민'으로 변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블로거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전하고 싶다. 국민들은, 그것도 자신의 주말을 반납하면서 거리에 나와 움직일 정도의 국민들이라면, 충분히 어느 정도의 지식과 자신의 주체적인 사고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 점을 충분히 고려한 다음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 생각한다. 탄핵 때도 촛불시위가 많이 있었지만, 효순이 미선이 사건때는 무려 10만이 넘는 인원이 참가했었지만, 선동이라는 말이 쓰여지지 않았다. (물론 조중동 열외) 첨언) 사실 필자의 견해는 이것보다 좀 더 나아간다. 나는 심지어 어린 학생들이 나온다한들 그게 무엇이 해로운지 인식하지 못하겠다. 가끔 예전에 썼던 글들을 돌이켜보면, 나의 글이나 언행, 행동이 모자라고 부족해서 부끄러울 때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그 때일 뿐, 지금은 그 부끄러움을 바탕으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 애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학생들에게 이런 경험은 돈으로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발한다. 우리나라처럼 척박한 교육 환경에서 '봉사활동 이후에 시위에 참가할 거에요'라고 말한 학생은 가히 대단해보일 정도다. 시위에 참가한다는 것, 그것이 축제의 형태든 집회의 형태든, 그 자체로 그 학생은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경험하고 있는데, 무엇이 해롭고, 무엇이 문제가 될지 의문스럽다.
PD수첩 "조중동, 우리는 당신들처럼 말 안바꾼다"
13일 후속편 방송키로, 한나라당 비난도 조목조목 반박광우병 보도로 파란을 일으킨 MBC PD수첩이 2일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맹비난에 조목조목 반박하며 오는 13일 광우병 후속편을 방영하겠다며 정면 대응에 나섰다. 조능희 < PD수첩> 책임PD(CP)는 2일 미디오오늘과 인터뷰에서 조선일보가 이날자 사설을 통해 PD수첩특정한 의도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비난한 데 대해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언론사에서 사설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일단 팩트부터 틀렸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사육소 100만 마리 가운데 광우병 소 30여 마리가 발견된 일본의 광우병 발생비율이 미국보다 비교할 수 없이 높다'고 했다. 그런데 일본은 전수검사, 모든 소를 조사한다. 그래서 30여 마리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사육소 1억 마리를 전부 조사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프로그램에서 미국이 사육소 0.1%만 조사한다고 했다. 이 사설을 쓴 사람이야말로 팩트를 조작하면서 축소시키는 사람이다. 이런 식으로 < PD수첩>을 폄하하는가. 같은 언론인이라는 것이 부끄럽다"고 일갈했다. 그는 동아일보의 비판에 대해서도 "동아일보도 한국인 유전자 취약부분을 말하는데, 그것은 주간동아나 과학동아에서 이미 나온 팩트들이다.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PD수첩 맹비난에 대해서도 "프로그램에서 안정성 문제만 얘기했는데 안정성을 지적하면 반미가 되고 반이명박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부풀린 것도 없고 팩트만 얘기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한나라당도 이해할 수 없는 게 (야당시절인) 지난해 8월만 해도 미 쇠고기 금수조치를 내리고 관련협상을 당장 중단하라고 그랬다"라며 "정치인이니까 정치적인 해석을 하겠지만, PD수첩은 정치를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라고 힐난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시청자를 선동하고 혹세무민한다고 그랬는데 방송에서 나오지 않은 이야기가 돌아다니는 것은 그들 책임이다. 여태껏 광우병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 아니가"라고 반문한 뒤 "조선동아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자신들이 쓴 광우병 관련사설이 여기 다 있다. 노무현 정부가 국민을 담보로 삼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나. 과연 누가 선동하고 누가 혹세무민하는 것인지 정확히 봤으면 좋겠다"라고 힐난했다. 그는 "PD수첩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난 정권부터 지금까지 견제해 온 게 뚜렷하다"며 "정권이 바뀐다고 조중동처럼 하던 말 안하고, 안 하던 말 하지 않는다. 시청자들을 위해서, 시청자가 원하는 것을 방송할 뿐"이라고 조중동을 질타했다. -------------- MBC최고다.. 이런 방송이 유사이래 있었던가? 황우석 건부터 PD수첩을 지지했지만, 권력 앞에서도 흐트러짐이 없는 요즘의 태도에 더할 수 없이 만족감을 느낀다. 다원성을 극한으로 표방할 수 있는 것이 시장이라 했던가. 시장에서 MBC가 영원히 이 기조를 변치 않길 바란다. 설사 비판을 위한 비판일지라도, 찬양 일색보다 훨씬 값지지 아니한가. "반이(反李) 좀 하면 안 되나?" 프레시안 | 기사입력 2008.05.03 19:07 | 최종수정 2008.05.03 19:17 [진중권 칼럼] 반美? 반李! [프레시안 진중권/중앙대 겸임교수] 어용언론의 전형을 보여주는 < 동아일보 > 가 촛불시위를 '반미반이'라 불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반미'는 아닌 것 같다. 시위 현장에서 반미 구호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반이'는 맞는 것 같다. 그 자리에서 터져 나온 구호의 대부분은 '반 이명박'이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왜 반이를 외치는가? 그 자리에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들의 욕망은 무엇인가? 탄핵 서명을 받기 위한 문안에도 나와 있듯이, 광우병 쇠고기 문제는 탄핵의 사유로 거론된 것 중의 하나일 뿐. 시민의 분노는 정부여당이 인수위 시절부터 해왔던 실정, 종종 사람을 어이없게 만드는 대통령 자신의 몰상식한 언행을 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위는 '반이'다. 그런데 반이(反李) 좀 하면 안 되나? 대중은 대통령을 탄핵하자고 외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수사학적 표현이지, 정말로 대중이 탄핵을 위한 절차를 밟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탄핵'이라는 말은 이명박 정권의 통치에 대한 대중의 거부를 담은 상징적 표현일 뿐이다. 대중은 마치 미국소를 먹으면 다 광우병에 걸릴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에 대한 과학적 기술이 아니라, 답답한 현실에 대한 정서적 표출일 뿐이다. 뜨거운 분노 속에서도 이 두 가지 차원을 구별하는 냉정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광우병의 위험을 불필요하게 과장할 때, 조ㆍ중ㆍ동과 같은 보수언론에게 쓸 데 없이 빌미만 주게 된다. 수사적 과장을 사용하는 구호를, 현실에 대한 기술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확실한 것은 광우병이 지극히 위험한 질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병을 막기 위해서 수입되는 쇠고기에 대해 정부는 최대한의 보호 장치를 마련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불과 몇 달 사이에 미국 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180도 바뀌었다. 미국 쇠고기 수입의 조건에 관한 한나라당의 입장도 불과 몇 달 사이에 180도로 바뀌었다. 나아가 7년 전 광우병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정부에 철저한 대비를 요구했던 < 조선일보 > 의 태도도 180도로 달라졌다. 하지만 그 사이에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학계의 견해가 달라졌던가? 그 사이에 달라진 것은 '정권'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전면 개방이 과학에 근거한 게 아니라, 정치에 근거한 조치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현 정권이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국민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안전성을 최대화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어떤 납득할 수 없는 이유에서 지난해까지 유지되어 왔던 자신의 입장을 180도로 뒤집고, 미국 측에 전면 개방에 동의해주었다. 대중의 분노는 여기서 비롯된다. 즉 당연히 자신을 지켜 주리라 믿었던 정부가 외려 자신들을 더 많은 위험에 노출시켰다는 데에 분노하는 것이다. 광우병의 위험이 존재한다면, 가능한 한 그 발생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어떤 다른 이유(그것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 타결이든, 한미동맹을 과시해야 하는 이명박 정권의 처지든)에서 작년까지도 유지해 왔던 자신의 원칙을 희생시켰다. 이것은 충분히 분노할 이유가 된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이제 수입 조건을 더 엄격하게 하기 위한 재협상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권이 이미 일을 저질러 버렸기 때문에, 재협상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야 정치권에서 재협상을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대중이 분노하지 않았다면, 그 정도의 제스처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날림 정권에서 날림으로 체결한 협정이니, 그 안에 빈틈은 없는지 꼼꼼히 검토하여, 하자가 발견되면 그것을 보완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대중은 제 몫을 했고, 이제 각계의 전문가들이 나서서 찬반양론의 토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나가면서 이 분노의 물결이 합리적인 통로로 흐르도록 채널화해 줘야 한다. 아마도 대미 수출의 극대화라는 시장주의 이념(그리고 한미동맹의 과시라는 정치적 이념) 때문에 이 정권은 국민의 생명권이 걸린 문제마저도 매우 신속하게, 그러다 보니 매우 안이하게 처리했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현 정권의 두뇌에 걸린 질병의 실체를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현 정권은 돈을 위해서는 다른 가치들은 모두 희생되어도 좋다는, 거의 시장주의 탈레반의 의식을 갖고 있다. 쇠고기 협상이 날림으로 이루어진 것도, 바로 그 보편적 날림 공사의 특수한 예일 뿐이다. 대중이 탄핵의 사유로 쇠고기 문제와 영어몰입교육, 대운하건설 등을 든 것은 대중들 스스로 이 점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분노는 쇠고기 문제를 넘어 다른 영역에서도 나타나는 병증을 진단하고 치유하기 위한 합리적 논의와 민주적 토론으로 발전해야 한다. 대중은 쇠고기 앞에서만 불안을 느끼는 게 아니다. 정권을 잡은 시장주의 탈레반들이 국민의 생명권, 교육의 공공성, 생태와 환경 등,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들을 가차 없이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데에 대한 두려움. 그렇게 날림으로 지은 국가라는 건물이 IMF 때처럼 와르르 무너질지 모른다는 데에 대한 불안감. 도대체 저들이 만들어낼 나라에 어떻게 우리의 아이들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는 공포감. 이것이 그들을 촛불집회로 데려온 것이다. '반이'는 그저 이명박이라는 개인에 대한 반감이 아니다. '반이'는 파란 쫄티에 붉은 색으로 S자 써 붙이고 나타나 나라를 구하겠다고 하는 개그 영웅에 대한 반감도 아니다. '반이'는 이명박이라는 개인이 그 화신의 역할을 하는 과격한 시장주의 이념, 거기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부패한 권력 집단에 대한 거부다. 정권에서는 이번 시위의 배후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말한다. 우스운 얘기다. 시위 현장의 분위기를 얘기하자면, 민주당 얘기는 꺼냈다가는 차가운 눈총의 세례를 받아야 할 상황이다. 또 진보신당에 몸을 담은 입장에서 말하자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이렇게 큰 시위를 일으킬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 불행히도 우리도 대중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그리하여 나도 진보신당 게시판에 "이번에는 조용히 대중의 지도를 따르자. 그것이 민주주의다"라는 글을 남기고 시위 현장에 나왔다. 누리꾼이 주도한 어제 시위 현장에는 태극기 이외에는 정당이나 단체의 이름을 내건 깃발은 단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그저, 학교 괴담 좋아하는 초등학생들처럼 쇠고기 괴담이나 유포하는 대중들의 유치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파악한다면, 그 역시 큰 오산이다. 이번에 대중들은 분노를 축제로 승화시켰다. 애국의 광기에 빠져 떼를 지어 몰려다니면서 이견을 가진 자에게 린치를 가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매우 성숙하게 행동하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탄핵서명은 82만을 넘었다. 물론 이 현실에 눈을 감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이상한 색칠을 해서 제 편할 대로 이해하고 싶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런 움직임 밑에 깔려 있는 대중의 욕망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앞으로 5년 동안 제대로 정부 노릇 하기 힘들 것이다. 도대체 집권 두 달 만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진중권/중앙대 겸임교수 ( tyio@pressian.com ) ------------ 말솜씨보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후덜덜한 글솜씨... 이명박 대통령 "공과를 따져보자"
당신의 해맑은 미소를 좋아합니다. 언제부턴가 나는 해맑은 미소를 잃었다. 호탕한 웃음이나 소위 썩소라고 일컫는 비소는 여전히 내 얼굴 위에 맴돌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그 어린 날의 해맑은 미소는 사라졌다. 해맑은 미소는 아름답다. 설령 얼굴이 아름답거나 잘 생기지 않다고 해도, 그 사람의 깨끗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난다는 해맑은 미소는 원빈이나 장동건, 김태희의 썩소보다도 더 사람을 끄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대학교에 오고 나서, 머리를 단지 주어진 자료나 지식의 암기나 습득에만 몰두하지 않고, 이리저리 밖으로 굴려보면서, 나는 내 능력 밖의 어려운 일들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성과였으나, 워낙에 크고 어려운 일들인데다, 내 능력은 보잘 것 없던 탓에, 내 얼굴에 뚜렷이 남아 있던 해맑은 미소는 점점 사라지고, 비소 따위만이 거울 속에서 나를 반길 뿐인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예전은 물론이고 지금도 나는 줄곧 ‘행복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꿈꾸어 왔다. 인간은 행복해야 하고, 사회도 그 행복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감히 나의 부족한 깜냥으로는, 상상의 범주 밖에 있는 것들에 대한 깊지 못한, 소리만 요란한 고민과 걱정을 해왔다. 그렇게 해서 해맑은 미소를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어린 후배들의 얼굴에서 그 해맑은 미소를 본 듯싶다. 아니, 어쩌면 나도 모르게, 그네들의 얼굴 속에서 해맑은 미소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홍세화씨를 만나서 점심식사를 한 날, 홍세화씨가 내게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었다. 파리에서 시위가 있어서, 담당자들이 대책회의를 하는 그 순간, 상급자들을 기다리던 파리 경찰서장은 한 권의 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책은 시집이었다고 한다. 파리 경찰서장은 무슨 생각으로 시집을 손에 쥐고 시위를 진압(혹은 협상)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까? 나는 그 심경이 너무도 궁금하다. 어쩌면 그가 내게 현실의 삶이 아무리 고난하고 어렵더라도 당신의 행복과 당신의 해맑은 미소를 잃지 말라고 말해주기를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세상은 만만치 않고, 몇 년 더 먼저 세상을 경험한 내게도 어렵고 고단한 이 생이, 이제 막 세상과 맞닿게 되었는데, 새로운 물결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아야만 하는 새내기와 저학번들에게는 더더욱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좋아라하는 후배들이여, 지금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라. 그리고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라. 그것이 너의 얼굴이며, 그것이 너의 삶이다. 세상이 고되더라도, 자신이 가진 행복과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길 바란다. 세상과 맞서는 가운데, 오롯이 자신의 해맑은 미소를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나도, 너희들도.
난 가끔 기분이 울적하거나 약간 센치해질 때, 내게 글재주가 없다는 사실에 많이 실망하곤 해. 지금 내 기분을 시 같은 일상의 나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법한 별세계의 방법으로 표현해낼 수 있다면.... 이라는 생각을 그럴 때면 꼭 하곤 해.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게 없던 시재나 문재가 단박에 생기는 즐거운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말야.
오랜만에 기쁜 마음으로 즐거운 과거를 떠올렸는데, 상상의 날개를 벗어던지자 마자 내가 있는 지금의 모습이 그 즐거운 기억과 너무나도 달라서 마음이 쓰라려. 조금만 더 그 때의 과거에서 머물다 올걸...하고 말야.
어제 한 TV쇼에서 연예인 하나가 그런 얘길 하더라고. 엄마는 부엌에서 요리하고, 아빠는 마루에서 뉴스보고, 자식은 때맞춰 학교다녀왔다고 하는 그런 여느 흔한 가정집에서 나는 소리가 그리웠다고...
그 덕분에 나도 잠시 그 즐거웠던 과거의 한 순간을 회상하게 되더라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다녀왔습니다." 라는 인사를 하면, 꼭 부엌에서 엄마가 나와서 "잘 다녀왔니? 무슨 일은 없었고?" 라고 물으시지. 엄마가 없는 집, 그래서 내 손으로 열쇠를 열고 들어오는 집은 너무나 허전했어. 이윽고 난 "엄마, 배고파."라고 마치 대여섯살 먹은 어린애마냥 엄마를 보채기 시작하고, 엄마는 때론 나긋하게 때론 준엄하게, "아빠 곧 오시잖아."라고 말씀을 하시지. 집 안에는 흰 밥 익어가는 내음과 고등어 굽는 소리, 된장이 부글부글 끓는 모습이 내 코와 귀와 눈을 즐겁게 하지. 한 차례 더 투덜댈라치면, 여동생이 귀가하고, 인내심이 다다를 지경에 이르면, 아빠가 "어, 우리 아들!"하며 들어오시지. 그렇게 맞는 저녁 식사는 굳이 소고기에 회가 없더라도, 된장 하나로도 내 배를 채우고, 내 마음을 채우고도 남았지. 그 때는 그걸 채 다 알지 못했지만 말야. 지금 난 내 손으로 아무도 없는 방의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반기는 엄마의 목소리도, 향긋한 저녁 내음도, 기다려야만 하는 아빠도 동생도 모두 있지 않지. 그게 꽤 쓸쓸해. 아직 가을도 채 안 되었는데 말야.
나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지만, 인간이 풍기는 각종 오감을 느끼기는 너무도 어려운 세상이야. 물질주의니 뭐니 하는 어려운 말을 이번만은 제쳐두더라도, 난 주위의 여러 친구들에도 충분한 만족을 구하지 못 한 거 같아. 괜히 그 친구들에게 짐을 지우고, 죄를 씌우는 거 같아 미안하지만 말야.
사실 며칠 전에 이런 감상 없이 처음 외국 여행을 가시는 부모님께 편지를 적었는데, 오늘 아침에 괜시리 엄마가 좋아하는 문자가 떠올라 한 번 보냈지. 무척 기뻐하시더라구. 내가 방에 들어올 때 나를 반겨주던 엄마를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순간, 엄마는 문을 열고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해줄 아들을 기다린 게 아닐까. 그냥 이런저런 생각들이 드네.
오랜만에 너무 너무 집에 가고 싶어. 보통 이런 기분은 흔치 않은데.. 집에 가서 "엄마, 아들!"이라고 외치고 싶어. 부글부글 된장 끓는 소리도 듣고 싶고, 오랜만에 만나 끝이 없는 여동생의 지루한 이야기도 듣고 싶어. 귀여운 우리 아빠랑 아침 댓바람에 등산에 올라가며, 이런저런 얘기도 듣고 싶고, 가족끼리 벚꽃구경이라도 가고 싶어. 하고 싶은 게 많은데, 해야 할 일이 내 발목을 잡고 있네.
쓸데없이 길기만 한 투정글이 되어 버렸네. 미안. 오늘은 그냥 말하고 싶었어. 부모님께 이런 말 할 수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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