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의 외교(동북아 정세를 바탕으로)
 

오늘은 그동안 생각해왔던 현정부의 외교와 관련하여, 기존의 정부들이 해왔던 외교전략, 정책과 대한민국의 외교 정세를 바탕으로 평가해 보고자 한다.


1. 동북아의 정세


동북아는 세계에서 가장 특이하고 주목할만한 지역이다. 이 동북아 정세에 개입하고 있는 중국-러시아-북한-한국-일본-미국, 이 6개국은 전 세계 10대 군사강국으로 평가되고 있다. 더불어 중국은 떠오르는 경제대국이자 매년 18%가량의 군비증강을 이뤄내고 있는 한 해 45조 이상의 군사비를 지출하는 군사강국이며, 러시아는 냉전시대의 양대산맥으로, 경제 발전이 더뎌 군사력이 쇠퇴했으나, 최근 천연 가스 등을 비롯한 유전 사업의 발전으로 경제강국, 군사강국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북한은 핵 등 비대칭전력이 극도로 강한 전 세계에서 가장 예측불가능한 국가로, 외교적으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국가이다. 일본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군사강국, 경제강국으로, 일본이 4개를 보유하고 있는 8-8(함정-헬기)함대는 그 중 하나만으로도 대한민국의 해군을 능가한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미국은 중국의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는 군비에 반발하지만, 한 해 450조 이상을 군비로 쓰는 최강대국이다. (게다가 이라크, 아프간 파병은 제외한 금액이다)

대한민국의 외교적 상황이 보이는가? 동북아 지역은 경제적으로 세계 최고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지역이라, 경제전쟁의 접전지이면서, 군사적으로 가장 치밀하면서도 가장 암묵적인 분쟁이 이뤄지고 있는 뜨거운 감자 중의 하나이다. 기존의 북한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림팩으로 대두되는 미-일 동맹에, 최근 계속된 군사훈련을 통해 견고해지는 중-러 동맹의 대립까지... 이런 상황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갈 길은 얼마나 멀고도 험한 것이던가. 예전에 누군가가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10만 과학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했으나, 어쩌면 더 필요한 것이 1천의 정예 외교요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만큼 대한민국의 외교적 상황은 특별하다.


2. 동북아 속의 대한민국 외교(예전-국민의 정부까지)


그 간의 대한민국의 행적은 어떠했을까? 오랜 예전부터 YS의 문민정부까지 이르는 시기는 오로지 미국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외교의 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특이할만한 일은 공산국가들의 붕괴와 발맞추어 북한과 대화를 어느 정도 시작했다는 점과 대만을 버리고 중국과의 외교 통로를 개척하는 것 정도가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때까지 집권세력들의 성향으로 일본과의 외교는 당연한 귀결이었기에 특이한 점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 외의 모든 외교 행적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대미외교의 부산물 정도에 불과했다. (사실 중국과의 외교 개통도 중국의 UN가입이라는 미국의 조치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기는 하지만)

그런데 DJ정권 이후로 대한민국의 외교 행적은 다소 상이해졌다. 그 이전까지 동북아정세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외교가 ‘only 미국’이었다면, DJ이후로는 외교의 축이 다극화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중국과의 외교 비중도 다소 커졌고, 햇볕정책 이후로 ‘통미봉남(미국과 통하고 남쪽을 봉한다)’의 북한과의 외교 비중은 상상초월의 수준으로 바뀌었다. 


3. 동북아 속의 대한민국 외교(참여정부)


직전의 노무현 정권은 어떨까? 참여정부 초기에는 중국과의 관계 설정이 무엇보다 외교의 핵심이었다고 생각된다. 참여정부 초기에는 대한민국의 가장 친밀한 친구였던 미국이 다소 의아할 만큼(중국은 미국의 잠재적 주적) 중국과 친밀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변화하는 동북아의 정세를 밀접하게 고려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급격히 부상하는 중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동북아 정세의 다극화를 고려하여 기존의 대미외교에만 얽매어 있던 한국 외교의 유연성을 부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북전략에서는 승계 여부에 논란이 일었던 햇볕정책을 그대로 승계하여, 북한과의 친밀한 관계를 꾸준히 유지함으로써, DJ시절에 이룩했던 화해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고자 노력했고, 이어서 화해의 분위기라는 틀 위에서 협력이라는 새로운 분위기를 창출하고자 노력했다. 그 와중에 서해교전과 미사일 실험, 심지어 북핵실험 문제까지 붉어져 나왔지만, 대북정책의 기조는 흔들림이 없었다. (조중동 등 일부는 이를 안전불감증이라고 하지만, 북한과의 친밀한 관계가 가져온 결과물(소위 북풍 등의 안보문제로 국민의 의사를 왜곡시키는 등의 문제가 발생않게 됨)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런 틀이 있었기에, 북한이 벼랑끝 전술로 내놓은 북핵 문제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평화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참여정부는 동북아 균형자론이라는 이름으로 동북아 정세에서 한국이 균형자적 입장을 띔으로서, 외교적 우위를 얻을 수 있는 전략을 제시했다. 쉽게 말하자면, 기존의 동북아 정세가 미,일 - 중,러 식의 경쟁 양상을 띄고 있을 때, 이제까지 한국은 대미전략에 치우쳐 미,일(한) - 중,러(북) 식의 양상을 창출해냈다. 그런데 동북아 균형자론과 햇볕정책을 통한 친북한 전략, 그리고 친중국 전략을 통해 동북아 정세에서 한국은 미,일 - 한국 - 중,러,북 식의 양상을 창출해냄으로써, 6자회담을 이끌어내는 계기를 만들어냈고, 동시에 6자회담에서 균형자이자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통해 외교적 지분을 스스로 창출해냈고, 얻어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은 동북아 외교 정세의 균형자적 지분을 얻어냈다고 생각한다. 균형자라는 말이 단순히 봉건제 시절의 ‘중앙권력’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에 해당하지는 않을 것이나, 대립하는 양대세력 사이에서 무게의 균형을 조절할 수 있는 지분을 가진 ‘캐스팅보트’의 의미라면 당시 우리는 충분히 그 역할을 수행해냈다고 생각한다.


이후, 한미FTA와 함께 참여정부는 취임 초기와의 외교노선과는 다소 상이한 외교전략을 취하게 된다. 당시 중국이 대한민국과의 FTA를 고대했던 점을 고려하면, 중국과의 fTA를 포기하고, ‘말많은’ 미국과의 fTA를 계획하고 추진한 배경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언급하기 어려운 것이, 미국과의 FTA 추진이 미국에서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이었는지, 동북아 정세와 관련하여 외교, 국방적 이익을 도모한 것이었는지 쉽사리 단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참고로 필자는 한미FTA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럼에도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한미관계가 급속히 발전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뉴욕포스트는 노무현은 예측할 수 없는 리더였지만, 그의 시절에 동맹이 강화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다만, 놀라운 점은 중국의 반응인데, 한미 FTA 등을 비롯한 대미동맹의 강화에도 중국이 크게 반응을 보이거나 걱정한 흔적이 없다는 점이다.(이명박의 친미 성향에 당선인 시절부터 중국이 걱정했던 것과 비교하면..) 그 동안 쌓아왔던 친중국 전략의 결실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경우, 참여정부 시절의 주요 외교대상국은 아니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정치인들의 독도 망언으로 시작해, 왜곡된 역사교과서와 독도 조사 사업까지 터지면서 한일외교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점이 어떤 문제를 일으켰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동아시아 외교의 두 축은 미국과 중국이다. 한-미 동맹은 반세기 이상을 자랑하는 기반을 갖추고 있고, 중국에게는 침략 역사가 있고, 영토 분쟁이 있는 일본보다 한국이 보다 편한 외교 상대국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본과의 외교는 한국으로서는 급한 상황이 아니었다. 도리어 일본의 경우, 6자 회담에서 북한이 가장 꺼리는 대화 상대국으로 찍혀, 동북아 정세에서 가장 손해를 본 국가가 되었다. (이런 점에는, 미국의 의사에 일본이 극단적인 반발을 표할 리 없다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의 외교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연출해낸 참여정부 시절의 외교정책은 합격점 이상의 점수를 받을만하다. 동북아의 중추인 미국, 중국 양자 모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가장 예측 불가능한 북한 역시 잘 다룸으로써, 동북아 외교 정세에서 큰 수확하였기 때문이다.


4. 현재의 대한민국 외교 상황


이명박 대통령(이하 이명박)의 경우, 친미성향이 경선 시절부터 우려되었다. 이에 당선인이 되고 난 이후, 중국은 한국을 외교상대국 지위를 한 단계 더 상승시키려는 계획을 마련하기도 했다. 북한의 경우는, 지속적으로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대북전략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미국과 일본은 한쪽에서 웃음을 감추고 있었다.


4.1 대북외교

북한과의 분쟁, 알력은 이미 예상된 결과였다. 북한은 줄곧 한나라당과 이명박에 우려를 표해왔고, 한동안 보기 어려웠던 비난방송과 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개성공단을 비롯한 휴전선 이북에서 공무원들은 모두 쫓겨나기에 이르렀고, NLL을 둘러싸고 조용할 날이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이런 와중에 북한은 가장 우려했던 ‘통미봉남’ 전략을 다시 시행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한국이 각종 조건을 달며 식량지원을 등한히 하는 사이에, 미국은 북한에 직접적으로 식량지원을 하게 되었고, 북한 역시 맘에 안 드는 한국이라는 친구에 구태여 손 벌릴 필요가 없게 되었는데, 이는 식량지원을 카드로 외교적 우위를 꾀하고자 했던 한국의 대북전략에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왔다. (정권이 베스트 프렌드라고 말하던 미국에게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4.2 중국외교

중국과의 외교 역시 문제가 많다. 중국이 이명박에 대해 깊은 우려를 해왔다는 점은 이미 언급했다. 이명박의 친미 성향은 DJ와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쌓아 온 한-중 외교의 성과를 흔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중국으로서는 동북아에서 입지를 굳히기 위해, 한국과의 친밀한 외교가 필수적이다. 특히 올해 중국은 말 많고 탈 많은 국제적 행사인 올림픽을 북경에서 치르기에 더욱 필수적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명박은 대북외교에서 DJ, 노무현 정권과는 다른 접근법을 들고 나왔고, 중국은 이 정권이 과거와는 다름을 인식했을 것이다. 이후 이명박은 첫 순방국으로 미국-일본을 정하는 한편, 쇠고기 협상을 타결하고, FTA 비준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중국이 우려하던 친미적 성향을 유감없이 뽐냈다.(대북강경책의 와중에 친미정책이 펼쳐졌으니, 중국의 입장이라면?) 당시 중국은 티벳 사건으로 세계적으로 압박을 받는 상황이라 외교 상대국이 절실했었다. 아마도 한국과 일본이 그 타깃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후진따오는 일본을 선택했다. (참고로, 중-일은 올해 초, 농약만두와 일본 기자의 스파이 파동으로 반일-반중 감정이 극도로 치닫는가 하면, 후진따오의 일본행을 중국에서는 극도로 만류했었다고 한다) 아마도 참여정부였다면, 외교적 고립에 빠질 수 있었던 중국의 순방국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구원투수로 등장할 한국은 중국과의 외교에서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지 않았을까?


4.3 일본외교

이명박은 일본에서 천황을 천황이라 칭하고(이제껏 일왕이라 칭함), 목례를 하면서, 과거의 일을 덮어두자는 식의 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었다. 그의 실용에 따르면, 물의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는 반(反)실용이라고 할 것이다. 참여정부의 외교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일본에 굳이 목 매달릴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명박은 스스로 일본으로 건너가, 우리와 외교 관계를 돈독히 해줄 것을 요청했다. 쉽게 말해, 우리가 가지고 있거나 적어도 뺏기지 않았던 주도권을 일본에게 넘겨준 것이다. 그것도 언제라도 꺼내어 일본의 외교 전략에 딴죽을 걸 수 있는 역사 문제, 독도 문제라는 히든카드마저 넘겨준 채 말이다.


4.4 미국외교

미국과의 외교는 굴종의 외교라는 말 외에 더할 말이 없다. 졸속으로 치룬 쇠고기 협상은 말할 나위도 없고, 교황이 미국에 방문하는 시점에 같이 방문하는 ‘뇌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방문일자로 미국에 과연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왔을지도 의문스럽다. 아니, 어찌 생각해보면, 미국과 미국민에 큰 영향을 못 행사하고 온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4.5 동북아 정세의 변화

참여정부 시절, 한국은 캐스팅 보트를 쥔 국가였다. 미,일-한-중,러,북 상황에서 미국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통로로 이용하기에 유용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 일본에 보다 친밀한 모습을 보여, 미,일,한-중,러,북 식의 양상이 된다면, 그리하여 한국을 거치고 얘기하는 것이나 거치지 않고 직접 얘기하는 것이나 동일하다면, 중국이나 북한이 구태여 한국을 통로로 거칠 필요가 없다. 미국 역시 한국의 존재를 크게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된다. (중-한 관계가 중-미 관계보다 더 돈독하다면, 중국으로서는 직접 껄끄러운 미국을 상대하는 것보다 미국과 친하면서 자신과도 친한 한국에게 입장을 설명하여 양자의 협상을 이끌어내는 촉매로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역학에도 이명박 정부는 후자의 경우를 택했고, 그 결과로 중국은 대화상대자로 한국이 아닌 일본을 택했고,(일본이 한국보다 미국과 친밀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동북아에서의 지분도 일본이 크니, 중국 입장에서는 중-한, 중-일 관계가 동등하다면, 한국보다 일본이 더 매력적인 상대국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미 속내를 다 보인 한국의 사정을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더불어 북한은 중국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상태에서, 한국이 아닌 미국과의 대화에 전력투구를 하며, 어렵게 구축해놓은 다자회담(6자회담)의 방식이 아닌 북-미 양자회담의 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 어렵게 유지해온 ‘캐스팅보트’의 지위와 지분을 상실했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전략은 거의 재앙 수준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냉전 속에서 스위스가 취했던 외교적 이익을 꿈꾸어야 했음에도, 스스로 그 역할과 지위를 차버렸다. 덕분에 대한민국이 동북아 외교 정세에서 얻어낼 발언권은 현격히 떨어졌고, 지위는 ‘대한민국’에서 ‘미국 측’으로 격하되었다. 외교란, 국가 간의 인간관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계산이 주가 되기에, 우정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사회생활 속에서 흔히 하는 인간관계 정도로 이해한다면, 그 속에서 신뢰를 쌓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한편으로 신뢰를 잃는 것이 얼마나 쉬운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지금의 지위를 유지하는 일도 얼마나 벅찬 것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우리는 어렵게 쌓아왔던 신뢰를 스스로 차버렸고, 어렵게 일구어낸 지위와 지분을 스스로 포기했다. 이제 앞으로 스스로 포기했던 것들을 다시 쌓아가야 하는데, 얼마나 어렵고 힘든 과정이 될지 걱정과 아쉬움이 가득할 뿐이다.


by 蒼天 | 2008/05/18 01:14 | 短想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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