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민영화에 반대한다!

온 나라가 더위와 올림픽의 도가니 속에 함몰되어 있다.

지극한 더위는 사람의 기력과 의지를 빼앗아 행동을 더디거나 적게 만들고, 우리와 같은 생활 시간을 갖는 옆 나라에서 열리는 이 올림픽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의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그에 투자하게 만들고 있다. 첫날엔 최민호가 눈물을 흘렸고, 둘째날에는 박태환이라는 신동이 빛을 밝혀주었으며, 양궁은 대한의 국기라 할만한 정도였다.

그러나 더위가 우리의 기력을 앗아가도, 올림픽이 우리의 눈과 귀를 잡아 둔다고 하여도 시계는 멈추지 않고 작동하고 있다. 내 삶을 알리는 시간도, 러시아와 그루지아의 전쟁 카운트다운도,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대적인 민영화의 카운트도...

출범 5개월 동안 수많은 부침을 경험한 이 정권에서는 무더위와 적절한 유화책, 그리고 올림픽 등으로 인해 유야무야된(혹은 희석된) 촛불 이후의 움직임에 일종의 자극이랄까, 유인이랄까 하는 것을 얻었던 듯 싶다. 지금의 한나라당과 청와대 및 기타 주류 보수 세력들 및 뉴라이트 계열이 친일적인 사고(어쩌면 사대적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 중 일부에서 상당수는 친일파와 적든 많든 연관되어 있음을 고려하면, 그들의 윗대가 그렇듯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영화가 시작되려고 하고 있다.
한때, 우스개로 나다니던 '초딩 방학'이라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무서운 일들이 지금 벌어지려 하고 있다. 영화 '괴물'에서 괴물이 오는 것도 모른 채, 음악 듣기에 여념이 없던 예쁘장한 아가씨마냥, 우리는 무슨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 지 걱정은 않고, 단지 지금 내 이목을 집중시키는 태극전사들의 소식에 정신이 팔려 있다. 솔직히 말해, 필자 역시 짜증스럽기 그지 없다. 이 더운 날씨에, 태극전사들이 전해주는 감동과 환희의 순간에 다만 몰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언급한 바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그루지아의 시계나 청와대의 시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서글픈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괴벨스에 관한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아니 굳이 괴벨스를 살피지 않더라도, 나치가 유대인과 집시라는 특정 집단에게 한 일을 생각해보면, 그들은 사회에 필요한 단결과 충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유나 그 외의 가치를 향한 개인의 욕구를 '증오'라는 형식으로 풀어왔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우리의 역사 또한 이 '증오'의 놀음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기득권을 잡고자 했던 정치가들이 이 땅의 국민들에게 던져 준 것은 '지역감정'이라는 형태의 '증오'였다. 이것 역시 자기 소속집단에 대한 단결을 강화하기 위해 다른 집단을 배타시하며, 그 메커니즘으로 '증오'라는 인간의 감정을 사용하고 있다. 로스쿨 법안이 국민들에게 열화와 같은 지지를 얻었던 첫 번째 이유 역시 '변호사 기타 법조에 대한 불신과 증오'였으며, 의약분업에서도 국민들의 의견이 시시비비를 넘어 양 세력 중 어느 쪽에 더 '증오감'을 가지고 있는가로 귀결되곤 했었다.

공기업을 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극히 모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그들은 '신의 직장'이라고 하며, 동경하며, 한편으로 그들은 역시 '신의 직장'이라는 이름으로 비꼬곤 한다.(이는 소위 졸부라고 칭해지는 이들을 향한 심리와 동일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공기업 민영화에 찬성하'려'는 이들은(이들은 입장을 '찬성'이라고 정해놓고 근거를 찾기에 이렇게 표현한다) 이 공기업에 대한 '증오'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공공 기관의 부실 경영이 그들 공공기관 구성원의 방만 경영에 의한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런 이유로 그들은 일반 사기업처럼 더 힘들고 많이 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위해 민영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곤 한다.

그런데 얼마 전 [포브스]지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은 OECD국가 중 가장 많은 노동시간을 '자랑'하고 있으며, 동시에 가장 낮은 수준의 '노동생산성'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포브스]지의 말에 따르면, 이 나라에서 '정시퇴근'이란 곧 승진 불가를 의미한다고 한다. 자, 한 번만 다시 생각해보자. 현재 한국의 근로자들은 가장 많은 노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쓸데없는 야근 등이 너무도 많다고 한다.(괜히 주말에 회사 나가서 올림픽 보고 있다는 푸념을 본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직장에 대한 만족도는 현저히 줄어든다. 동시에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소요한 덕분에 자기 개발을 위한 시간 투자는 생각해 볼 여력조차 없으며, 삶의 질 역시 감소하고, 부족한 휴식 및 자기 개발 시간은 사회 역꾼들의 창의성과 발산적 사고를 극히 저하시킨다. 이는 기본적인 발상 차원의 것으로, 추가적으로 사회학적 연구가 더해진다면, 쓸데없이 긴 노동시간이 얼마나 '노동생산성'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는지 보다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을 통해서 본다면, 공기업 민영화와 관련해서 공기업 근무자 및 공무원(공무원들도 같이 욕을 먹으므로 같이 쓴다)들을 소위 '더 굴려야 한다'는 사람의 발상은 고루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일반 사기업이 공무원 및 공기업처럼 변모하여, 불필요한 노동시간을 줄이며, 노동생산성을 증진시킬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사회 전체적인 만족도와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사회 구성원들을 자기 개발에 더 몰두하게 하여 보다 경쟁력 있는 사회로 변모시키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올림픽 보면서 느끼지 않았는가? 외국의 올림픽 선수들은 운동 외에 여타의 직업을 갖춘 생활 체육인들이다. 이들이야말로 불필요한 노동시간을 줄인 후 얻은 자기 개발 시간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끌어올린 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공기업은 이윤 추구를 절대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이 아니다. 지금 우리의 공공복리와 사회 전체적 부를 생각해야할 자리에는 한 때 사익(私益) 추구를 맹목적으로 신봉해 온 기업의 CEO가 자리하고 있고, 덕분에 우리는 연이어 사서 고생을 하고 있다. 아마도 그 사람은 아직도 자신의 본분을 모르는 것 같으며, 온 기업이 사익추구에 전념하면, 국부가 증대된다는 말도 안 되는 19세기적 발상을 하고 있는 듯 싶다.(이런 생각은 시장실패 정도 알면 다 고쳐지지 않나?) 공기업의 경우, 시장실패를 막기 위해 등장한 것으로서, 일반 사기업이 담당했을 때 문제가 빈발할 것 같은 부분에서 특히 자리하고 있다. (물론 그럴 필요성이 없는 부분에 있는 공기업이나, 시대의 변화로 일부 공기업의 경우 사회적 필요성이 변모했을 수 있음은 인정한다) 그런 탓에 이런 공기업은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수자원공사의 최대의 목적은 사회구성원들에게 공급될 안전한 수자원을 확보하는 일일 것이며, 그 목적을 받치는 몇 가지 부수적인 목적과 원칙으로 운용되는 것일 것이다. 전기나 가스와 같은 경우 역시 같은 맥락일 것으로, 이런 공기업들이 지나치게 사익을 추구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며, 공기업 민영화와 관련해서는 대처 시절에 무단하게 진행했다가 소위 피똥을 싼 영국의 경험이 있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음으로, 민영화 찬성론자들은 공기업이 맡고 있는 부분을 사기업에게 맡기면, 공기업의 비효율과 대국민 신뢰 하락 등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 방법으로는 민영화로 인해 문제가 발생 예상 부분을 공적으로 보조, 규제하는 방식을 취하면 족하다고 한다.(서울대 행대, 김준기 교수)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와 같은 견해는 상당히 의문스럽다. 이는  민영화가 저와 같은 공기업의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백번 양보하여 그 효과를 긍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민영화된 기업(민영화가 되어 사적 소유권의 영역으로 포함됨으로써, 국가나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적어지는데)이 발생시킬 수 있는 문제점을 어떻게 극소화된 보조, 규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쉽게 얘기해서 공기업의 경우는 국가나 정부가 필요에 따라 개입이 용이하여, 공기업이 발생시킬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쉽게 대응하고 예방, 규제할 수 있으나, 민영화가 되면, 개입 자체가 어려워져서, 설사 문제를 예상한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해 사적 소유권을 침해하지 않는 정도로만 대응할 수 있을 뿐인데다가,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한 공기업의 운영에 대해 의문을 표하면서, 어떻게 극소수의 안전장치 밖에 없는 민영화의 운영에 대해서는 확언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게다가 설사 아주 필요최소한이면서 효율적인 규제가 설립되어 작동된다 하더라도, 어차피 그것이 '규제'임은 명백한 사실로, 민영화된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거추장스럽기는 당연지사인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소위 '규제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그나마 필요한 규제마저도 얼마든지 없어질 확률이 적지 않다.(이는 최근 지주회사나 출총제 제한 등과 같은 필요한 규제들이 '규제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사라져 간 예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또 다음으로, 기본적으로 문제란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법으로, 그것이 빨리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좋은 결과로 이어질 확률이 크다고 할 수 있다.(우리 사회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존재하기 마련인, 사회의 문제점 등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해 심각한 결벽증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가령, 암의 경우처럼, 언제 발견되냐에 따라 환자의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기업의 부정 부패, 비리가 빨리 드러나는 것과 이미 만연한 이후에 드러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은가? 이런 면에서 볼 때, 사기업은 아주 심각한 문제를 가진다. 공기업과 공공 기관의 경우, 그 운영과 관련한 정보에 대해 신문이나 언론의 접근권이 훨씬 넓게 인정되는 반면, 사기업의 경우는 보다 어렵고 정보를 사기업 측에서 차단하기도 용이하다. 이는 기업 자체의 문제가 보다 더 치밀하고 깊게 형성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결국 공기업의 운영보다 사기업의 운영에 있어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개연성이 높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다음으로 언론에서 수없이 때리고, 국민들이 불만을 갖는 것은 공기업의 '운영'이지, 결코 공기업의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촛불집회가 한창이기 전에, 건보 민영화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들이 나왔는데, 국민들은 건보의 현실화에 찬성하지, 결코 민영화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이는 국민들 스스로가 공기업(혹은 공적 장치)의 '존재'에 대해 동의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공기업의 비효율, 일탈의 문제 및 신뢰 하락 등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공기업이 갖는 최고의 목적(Mission)과는 다소 떨어져 있는 부수적인 문제라고 생각되며,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은 공기업의 '존재' 자체를 없앰으로써 해결할 것이 아니라, 공기업에 대한 감시와 제재의 수준을 높이는 등 보다 더 나은 수준의 운영으로 극복, 대처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상의 모든 이유를 넘어서,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나라 사람들의 중지가 모아지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저런 변화의 영향을 온몸으로 맞게 될 이 땅의 국민들이 이에 대해서 충분한 생각이나 의견을 밝히지 않았고, 그에 대해 충분한 의견 수렴 절차가 없었다는 점이다. 정연주 사장과 관련해 법에 없는 해임권도 있다고 해석하는 이들은, 우리의 손에 의해 뽑힌 대표 나부랭이에 불과한 자들로써, 얼마든지 우리 손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

우리는 선거철에만 눈과 귀와 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by 蒼天 | 2008/08/14 02:08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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