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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뜨겁고도 차가운 하루였다. 아침에 있었던 뜻밖의 유감스러운 사건이 오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뜨겁다. 오늘 아침 몇몇의 사람들이 일상의 추위가 아닌 때 아닌 뜨거움으로 생과 사의 경계를 달리 했다. 그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려는 세상을 향해 화염병을 던져야만 했다. 그들은 그 화염병을 통해서 자신이 조금 더 소중하게 인식되기를 바랐지만 결국 돌아보는 수고로움이 싫었던 세상 덕분에 생을 마쳐야만 했다. 그들이 죽어 간 이유는 뜨거웠기 때문이다. 불로 인해서 뜨거웠고, 살아가기 위해서 뜨거웠다. 그들은 영화나 드라마 같이 36도의 뜨거운 피가 통하지 않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비장하여 뜨겁지 않으면 생존하기조차도 어려운 이 현실 공간에서 살아가는 존재였기에 화염병을 던져야만 했다. 드라마 속에서 그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도 예쁘장한 옷과 예쁘장한 마음으로 치장하고 있지만, 냉혹한 현실 속에서 그들은 허름한 옷과 치열한 마음가짐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던 탓이다. 아마도 어떤 이들은 영화나 드라마 속의 피가 통하지 않는 무형의 캐릭터를 연상하고선 화염병을 이해하지 못 할런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외침이나 절규가 귀에 들릴 리 만무하며, 고통과 구원을 원하는 목소리에는 그냥 인상을 찌푸릴 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런 이들에게 이런 모습은 너무도 ‘드라마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차갑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내 마음은 차디차기만 하다. 이 처참하고 끔찍한 사건을 보면서도 잠깐의 한숨을 내쉴 뿐이다. 분노와 증오란 잠시 잠깐의 스쳐지나가는 감정에 불과하다. 심지어는 슬픔마저도 이내 가라앉는다. 어느새 나는 그들에게 익숙해져 가고 있다. 지난 6월의 뜨거웠던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 공백을 메우고 있는 것은 ‘익숙함’이라는 새로운 존재다. 여름의 물대포 덕분인지, 무거운 내 몸뚱아리를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움직이게 만드는 분노는 겨울의 물대포 앞에서는 금세 식어버렸다. 여름의 사그라든 기억 덕분인지, 내 마음을 하얗게 불태웠던 증오 역시 이내 꺼져버렸다. 나의 마음도 움직이지 않는다. 감각의 역치 탓인가, 아니면 지금 정권자들이 보여줬던 기억 탓인가. 그 이상이 나오지 않는 것에 안도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정도의 증오와 분노는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더 이상은 특별한 유인조차 되지 않는 것인가.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증오와 분노를 일상화시키고 있다. 권력의 횡포와 만행, 불의, 불인, 부정의, 그 모든 것을 넘어 사람의 목숨까지... 우리로 하여금 증오와 분노에 길들여지게 훈련시키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고, 나 역시 그러하다. 의도적으로 신문의 정치면을 넘겨 버리고, 웬만해선 알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증오에 익숙해졌고, 분노에 길들여졌으며...유감스럽게도 너무나 무력해지고 있다. 그런 탓에 작은 일에 예민해지고, 증오와 분노를 쉽게 표출하고 자신의 감정을 갈무리하는 일에 서툴러지고 있다. 쉽게 화를 내고, 쉽게 까칠해지지만, 무언가 진취적인 일로 향하는 에너지를 발산해내지는 않는다. 지난 1년여의 기억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내일이 되면 또 오늘의 일이 친구와의 술안주거리로 전락해버릴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서글퍼도 그게 현실이라는...헛소리를 연신 해대고, 한숨이나 푹푹 내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모든 부정의한 행동이 어느새 부메랑처럼 팽그르르 돌아서 나와 나의 가족을 위협할 수도 있다. 그 때도 나는/우리는 익숙함의 함정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어쩔 수 없음’을 외치고, 시간을 약으로 삼아 한 순간의 술안주로 삼을 것인가. 쉽게 증오했다가 금방 꺼져버릴 것인가. 예전에 본 어떤 글 중에 독일의 나치가 횡행할 때, 한 사람이 옆집의 유대인이 잡혀갈 때도 ‘내 일이 아니어서’ 가만있었고, 옆의 공산당이 잡혀갈 때도 ‘내 일이 아니어서’ 가만있었다가 이후 자신이 잡혀갈 때가 되어서야 자신이 잘못 행동했음을 알았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어느새 팽그르르 돌아 나와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소중한 가치들을 위해할 그들이 두렵다. 지금 당장 움직이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의식하고 있자. 최소한 기억하고 있자. 최소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익숙함에 길들여지지 말고 인지해내자. 그들은 불 속에서 “살려달라고” 외쳤을 것이다. 목이 터지도록. 그들은 불 속에서 자신의 괴로움을 외쳤을 것이다. 목이 터지도록. 그럼에도 그들은 불 속에서 죽어야 했다. 아무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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