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대통령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불면에 시달리며 맞은 아침은 괴롭기 짝이 없다.
정신을 추스리고 몸을 다듬어 쪽잠이라도 자려는 찰나에 이 땅을 흔드는 소식이 내 눈이라고 해서 안 뛸 리 만무하다.
그렇게 노무현 전대통령의 사망 소식은 내게 접해졌다.

나는 그를 뽑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선거권이 없었던 나는 그를 지지하지도 않았다.
경상도에서 한나라당과 조선일보의 우산 속에서 자라온 내게 그는 YS를 배신한, 영남을 배신한 '배신자'에 불과했다.
그는 배포가 좁은 사람이고, 시끄러운 사람이었으며,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해에 나는 대학에 입학했고, 경상도를 떠났으며,
곧 한나라당과 조중동으로부터도 벗어났다. 나는 그를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딜레마에 봉착해야만 했다. 그를 좋아해야 할 지, 싫어해야 할 지 정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그를 다시 보았을 때, 나는 이라크전 반대 시위의 군중 속에 있었고, 이후에는 이라크전 파병 반대 시위 속에 있었다.
그의 4대 개혁 법안과 전작권 환수에 찬성을 했지만, 평택 미군 기지 이전에 반대했고,
그의 역작이었던 한미FTA를 전례없이 비판했으며 실망하기도 했다.

그의 재임 기간 중에 내가 그를 지지했던 적은 그리 길지 않다. 오히려 비판을 가한 일이 더 많았고,
때때로 실망하기도 하고, 비판의 수준이 얕지 않았던 적도 많았다.

그러나 그가 임기를 마치고,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만인들 속으로 현현한 그 순간,
최고의 권력자가 다음날 옆집 할아버지처럼 변모한 그 순간, 그리고 그 결정의 뜻을
잊을 수 없다. 그는 재임 동안에 받지 못 했던 사랑을 퇴임 후에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나는 그를 완전히 이해한 적도 없고, 그를 꾸준히 존경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를 좋아했던 것임에는 틀림없었던 듯 싶다.

혹자에게 배포가 좁아 보였던 그의 성격은 내게는 솔직함과 소탈함으로 보였고,
혹자에게 시끄러웠던 그의 음성은 내게는 그의 열정과 의지로 비춰졌으며,
속을 알 수 없다는 평가는 잘못이며 왜곡임을 알고 있었다.

그 이전 누구도 하지 못 했고, 아마 그 이후 누구도 하기 힘든
만인의 지상에서 만인의 지하로 내려온 그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는 그 이후 모든 권력자들에게 하나의 지표를 보여주었으며, 그 스스로가 전범이 되었다.



그런 그 분이 돌아간 지금, 나의 기분은 먹먹함 그 자체와 같다.
그가 검찰에 소환되기 전에 남겼던
"여러분, 저는 더 이상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는
말만이 공허히 내 마음과 머리와 귓전을 윙윙댈 뿐이다.

무엇이 오늘의 일을 현출하게 되었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이 험한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드라마와 같은 삶을 살았던, 내가 좋아했던 그 분이 평안하시길 빈다.

대통령님, 감사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by 蒼天 | 2009/05/23 10:40 | 短想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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