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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삶을 만들어 보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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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푸른 하늘이 보인다. 자, 저 푸르디 푸른 하늘로 가자.</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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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3 Aug 2008 17:08:5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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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삶을 만들어 보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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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공기업 민영화에 반대한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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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온 나라가 더위와 올림픽의 도가니 속에 함몰되어 있다. <br><br>지극한 더위는 사람의 기력과 의지를 빼앗아 행동을 더디거나 적게 만들고, 우리와 같은 생활 시간을 갖는 옆 나라에서 열리는 이 올림픽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의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그에 투자하게 만들고 있다. 첫날엔 최민호가 눈물을 흘렸고, 둘째날에는 박태환이라는 신동이 빛을 밝혀주었으며, 양궁은 대한의 국기라 할만한 정도였다. </p><p>그러나 더위가 우리의 기력을 앗아가도, 올림픽이 우리의 눈과 귀를 잡아 둔다고 하여도 시계는 멈추지 않고 작동하고 있다. 내 삶을 알리는 시간도, 러시아와 그루지아의 전쟁 카운트다운도,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대적인 민영화의 카운트도...<br></p><p>출범 5개월 동안 수많은 부침을 경험한 이 정권에서는 무더위와 적절한 유화책, 그리고 올림픽 등으로 인해 유야무야된(혹은 희석된) 촛불 이후의 움직임에 일종의 자극이랄까, 유인이랄까 하는 것을 얻었던 듯 싶다. 지금의 한나라당과 청와대 및 기타 주류 보수 세력들 및 뉴라이트 계열이 친일적인 사고(어쩌면 사대적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 중 일부에서 상당수는 친일파와 적든 많든 연관되어 있음을 고려하면, 그들의 윗대가 그렇듯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p><p>&nbsp;</p><p>&nbsp;</p><p>민영화가 시작되려고 하고 있다. <br>한때, 우스개로 나다니던 '초딩 방학'이라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무서운 일들이 지금 벌어지려 하고 있다. 영화 '괴물'에서 괴물이 오는 것도 모른 채, 음악 듣기에 여념이 없던 예쁘장한 아가씨마냥, 우리는 무슨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 지 걱정은 않고, 단지 지금 내 이목을 집중시키는 태극전사들의 소식에 정신이 팔려 있다. 솔직히 말해, 필자 역시 짜증스럽기 그지 없다. 이 더운 날씨에, 태극전사들이 전해주는 감동과 환희의 순간에 다만 몰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언급한 바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그루지아의 시계나 청와대의 시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서글픈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p><p><br>괴벨스에 관한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아니 굳이 괴벨스를 살피지 않더라도, 나치가 유대인과 집시라는 특정 집단에게 한 일을 생각해보면, 그들은 <strong>사회에 필요한 단결과 충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유나 그 외의 가치를 향한 개인의 욕구를 '증오'라는 형식으로 풀어왔음</strong>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우리의 역사 또한 이 '증오'의 놀음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p><p>기득권을 잡고자 했던 정치가들이 이 땅의 국민들에게 던져 준 것은 <strong>'지역감정'이라는 형태의 '증오'였다</strong>. 이것 역시 자기 소속집단에 대한 단결을 강화하기 위해 다른 집단을 배타시하며, 그 메커니즘으로 '증오'라는 인간의 감정을 사용하고 있다. 로스쿨 법안이 국민들에게 열화와 같은 지지를 얻었던 첫 번째 이유 역시 '변호사 기타 법조에 대한 불신과 증오'였으며, 의약분업에서도 국민들의 의견이 시시비비를 넘어 양 세력 중 어느 쪽에 더 '증오감'을 가지고 있는가로 귀결되곤 했었다. </p><p>공기업을 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극히 모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그들은 '신의 직장'이라고 하며, 동경하며, 한편으로 그들은 역시 '신의 직장'이라는 이름으로 비꼬곤 한다.(이는 소위 졸부라고 칭해지는 이들을 향한 심리와 동일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공기업 민영화에 찬성하'려'는 이들은(이들은 입장을 '찬성'이라고 정해놓고 근거를 찾기에 이렇게 표현한다) 이 공기업에 대한 '증오'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공공 기관의 부실 경영이 그들 공공기관 구성원의 방만 경영에 의한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런 이유로 그들은 일반 사기업처럼 더 힘들고 많이 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위해 민영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곤 한다. </p><p>그런데 얼마 전 [포브스]지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strong>한국은 OECD국가 중 가장 많은 노동시간을 '자랑'하고 있으며, 동시에 가장 낮은 수준의 '노동생산성'을 자랑하고 있다</strong>. 또한 [포브스]지의 말에 따르면, 이 나라에서 '정시퇴근'이란 곧 승진 불가를 의미한다고 한다. 자, 한 번만 다시 생각해보자. 현재 한국의 근로자들은 가장 많은 노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쓸데없는 야근 등이 너무도 많다고 한다.(괜히 주말에 회사 나가서 올림픽 보고 있다는 푸념을 본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직장에 대한 만족도는 현저히 줄어든다. 동시에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소요한 덕분에 자기 개발을 위한 시간 투자는 생각해 볼 여력조차 없으며, 삶의 질 역시 감소하고, 부족한 휴식 및 자기 개발 시간은 사회 역꾼들의 창의성과 발산적 사고를 극히 저하시킨다. 이는 기본적인 발상 차원의 것으로, 추가적으로 사회학적 연구가 더해진다면, 쓸데없이 긴 노동시간이 얼마나 '노동생산성'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는지 보다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p><p>이 점을 통해서 본다면, 공기업 민영화와 관련해서 공기업 근무자 및 공무원(공무원들도 같이 욕을 먹으므로 같이 쓴다)들을 소위 '더 굴려야 한다'는 사람의 발상은 고루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일반 사기업이 공무원 및 공기업처럼 변모하여, 불필요한 노동시간을 줄이며, 노동생산성을 증진시킬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사회 전체적인 만족도와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사회 구성원들을 자기 개발에 더 몰두하게 하여 보다 경쟁력 있는 사회로 변모시키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올림픽 보면서 느끼지 않았는가? 외국의 올림픽 선수들은 운동 외에 여타의 직업을 갖춘 생활 체육인들이다. 이들이야말로 불필요한 노동시간을 줄인 후 얻은 자기 개발 시간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끌어올린 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p><p><br>공기업은 이윤 추구를 절대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이 아니다. 지금 우리의 공공복리와 사회 전체적 부를 생각해야할 자리에는 한 때 사익(私益) 추구를 맹목적으로 신봉해 온 기업의 CEO가 자리하고 있고, 덕분에 우리는 연이어 사서 고생을 하고 있다. 아마도 그 사람은 아직도 자신의 본분을 모르는 것 같으며, 온 기업이 사익추구에 전념하면, 국부가 증대된다는 말도 안 되는 19세기적 발상을 하고 있는 듯 싶다.(이런 생각은 시장실패 정도 알면 다 고쳐지지 않나?) 공기업의 경우, 시장실패를 막기 위해 등장한 것으로서, 일반 사기업이 담당했을 때 문제가 빈발할 것 같은 부분에서 특히 자리하고 있다. (물론 그럴 필요성이 없는 부분에 있는 공기업이나, 시대의 변화로 일부 공기업의 경우 사회적 필요성이 변모했을 수 있음은 인정한다) 그런 탓에 이런 공기업은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수자원공사의 최대의 목적은 사회구성원들에게 공급될 안전한 수자원을 확보하는 일일 것이며, 그 목적을 받치는 몇 가지 부수적인 목적과 원칙으로 운용되는 것일 것이다. 전기나 가스와 같은 경우 역시 같은 맥락일 것으로, 이런 공기업들이 지나치게 사익을 추구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며, 공기업 민영화와 관련해서는 대처 시절에 무단하게 진행했다가 소위 피똥을 싼 영국의 경험이 있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br></p><p>다음으로, 민영화 찬성론자들은 공기업이 맡고 있는 부분을 사기업에게 맡기면, 공기업의 비효율과 대국민 신뢰 하락 등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 방법으로는 민영화로 인해 문제가 발생 예상 부분을 공적으로 보조, 규제하는 방식을 취하면 족하다고 한다.(서울대 행대, 김준기 교수)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와 같은 견해는 상당히 의문스럽다. 이는&nbsp; 민영화가 저와 같은 공기업의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백번 양보하여 그 효과를 긍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민영화된 기업(민영화가 되어 사적 소유권의 영역으로 포함됨으로써, 국가나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적어지는데)이 발생시킬 수 있는 문제점을 어떻게 극소화된 보조, 규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쉽게 얘기해서 <strong>공기업의 경우는 국가나 정부가 필요에 따라 개입이 용이하여, 공기업이 발생시킬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쉽게 대응하고 예방, 규제할 수 있으나, 민영화가 되면, 개입 자체가 어려워져서,</strong> 설사 문제를 예상한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해 사적 소유권을 침해하지 않는 정도로만 대응할 수 있을 뿐인데다가,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한 공기업의 운영에 대해 의문을 표하면서, 어떻게 극소수의 안전장치 밖에 없는 민영화의 운영에 대해서는 확언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br>게다가 설사 아주 필요최소한이면서 효율적인 규제가 설립되어 작동된다 하더라도, 어차피 그것이 '규제'임은 명백한 사실로, 민영화된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거추장스럽기는 당연지사인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nbsp; 소위 '규제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그나마 필요한 규제마저도 얼마든지 없어질 확률이 적지 않다.(이는 최근 지주회사나 출총제 제한 등과 같은 필요한 규제들이 '규제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사라져 간 예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br></p><p>또 다음으로, 기본적으로 문제란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법으로, 그것이 빨리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좋은 결과로 이어질 확률이 크다고 할 수 있다.(우리 사회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존재하기 마련인, 사회의 문제점 등이&nbsp;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해 심각한&nbsp;결벽증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nbsp;가령, 암의 경우처럼, 언제 발견되냐에 따라 환자의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strong>기업의 부정 부패, 비리가 빨리 드러나는 것과 이미 만연한 이후에 드러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은가?</strong> 이런 면에서 볼 때, 사기업은 아주 심각한 문제를 가진다. 공기업과 공공 기관의 경우, 그 운영과 관련한 정보에 대해 신문이나 언론의 접근권이 훨씬 넓게 인정되는 반면, 사기업의 경우는 보다 어렵고 정보를 사기업 측에서 차단하기도 용이하다. 이는 기업 자체의 문제가 보다 더 치밀하고 깊게 형성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결국 공기업의 운영보다 사기업의 운영에 있어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개연성이 높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br></p><p>또 다음으로 언론에서 수없이 때리고, <strong>국민들이 불만을 갖는 것은 공기업의 '운영'이지, 결코 공기업의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strong> 촛불집회가 한창이기 전에, 건보 민영화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들이 나왔는데, 국민들은 건보의 현실화에 찬성하지, 결코 민영화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이는 국민들 스스로가 공기업(혹은 공적 장치)의 '존재'에 대해 동의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공기업의 비효율, 일탈의 문제 및 신뢰 하락 등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공기업이 갖는 최고의 목적(Mission)과는 다소 떨어져 있는 부수적인 문제라고 생각되며,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은 공기업의 '존재' 자체를 없앰으로써 해결할 것이 아니라, 공기업에 대한 감시와 제재의 수준을 높이는 등 보다 더 나은 수준의 운영으로 극복, 대처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p><p><br>&nbsp;</p><p>그리고 <strong>이상의 모든 이유를 넘어서,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나라 사람들의 중지가 모아지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strong> 저런 변화의 영향을 온몸으로 맞게 될 이 땅의 국민들이 이에 대해서 충분한 생각이나 의견을 밝히지 않았고, 그에 대해 충분한 의견 수렴 절차가 없었다는 점이다. 정연주 사장과 관련해 법에 없는 해임권도 있다고 해석하는 이들은, 우리의 손에 의해 뽑힌 대표 나부랭이에 불과한 자들로써, 얼마든지 우리 손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 <br></p><p>우리는 선거철에만 눈과 귀와 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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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미분류</category>
		<pubDate>Wed, 13 Aug 2008 17:08:51 GMT</pubDate>
		<dc:creator>蒼天</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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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부 2003-13169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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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오늘 여름 계절학기의 마지막 시험이 있다. <br>2008년 8월의 학위수여식 전까지 나는 여전히 이 학교의 학부생으로써 자리하고 있겠지만, 오늘의 시험이 끝나면, 공식적인 나의 대학생 생활은 끝을 맺는다. <br><br>좋았는지, 나빴는지, 효율적이었는지, 비효율적이었는지...<br>알 수 없다. 재어보려 해도, 채 제대로 잴 수도 없겠지만, 나의 길다면 길었던,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웠던 대학 생활은 아마 오늘의 순간과 함께 끝을 맞으리다. 이제 기껏해야 내게 잘 해줬던 법대 아주머니에게 음료수 한 병 선물한다던지, 지도교수님께 그간의 감사를 표하는 정도가 남았을 뿐이다.&nbsp;<br><br>사실 얼마나 이 곳을 떠나고 싶었던가. 얼마나 졸업을 회피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보다 더 기다리지 않았던가.<br>그런데도 가슴 한 켠에 느껴지는 이 짠함은 뭐라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지나간 시간들, 사람들, 흔적들, 실수들, 후회와 아쉬움이 내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외친다고 해서 들릴리도 없고, 잡으려 한다 해서 잡을 수 있을 리 만무한 그것들의 지나간 자욱에는 오로지 공허함만이 나를 반기고 있을 뿐이다. <br><br>엄밀히 말해 고시생인 나는 졸업을 한다고 해서 이 곳을 떠날 형편은 아니다. 여전히 몸은 이 곳에 메어 있어야 하는 탓에 혹 왠 주제 넘는 감상이냐고 핀잔을 준다고 한들, 채 반박할 말이 딱히 없다. 그러나 어디 감정이란 게 논리로 갈무리되는 것인가. 그냥 서글프고 아쉽고 안타까울 따름이다.<br><br>무엇이 그렇게 내게 부정적인 감상만을 남기는 것일까?<br>채 제대로 된 배움이 없었다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남들이 목숨거는 학점 하나하나에 아쉬움을 갖지 않으면서도...좋은 친구들을 얻었고, 좋은 스승을 만나보기도 했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기회를 얻기도 했으면서...<br>잘 모르겠다. <br>혹 어쩌면 단지 내 지난 인생의 1/4이 어떻게든 흘러간 사실 그 자체가 아쉬운 건지도 모르겠다.<br><br>물 흐르듯 지나온 시간 동안...<br><br>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주위의 벗과 후배와 룸메이트를 떠나 보내야 했고, 내 스스로의 인생의 굴곡을 헤아려야 했다. 그 와중에 발을 헛디디기도 하고, 상처를 부풀려 키우기도 했으며, 잦은 어리석음과 부족함으로 고생하곤 했었다.&nbsp;돌이켜보면 내가 지나온 대학의 길은 잘 포장되어 멋진 차들이 달리는 고속도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엄한 비포장도로나 투박한 국도였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그러나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속도감 대신 국도나 비포장도로에서 달리면서 나는 무언가를 얻었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내가 얻지 못 했다 하더라도 그 국도나 비포장도로는 내게 '무언가'를 주었을 것이다. <br><br>내가 아쉬운 것은 그 고속도로의 속도감이었을까?<br>아니면 내가 국도나 비포장도로를 선택한 것에 대한 아쉬움일까?<br><br>이것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br>둘 다&nbsp;맞는 것 같기도 하고, 둘 모두 아닌 것 같기도 하다.<br>고속도로의 속도감을 느끼지 못 해 부러운 것 같기도 하고, 국도를 선택하고도 그 이점을 채 누리지 못 하는 어리석음에 아쉽기도 하다. <br><br><br>그 긴 시간을 지나오면서 이렇게도 답을 못 내는 것을 보면, 참 답답하지만...<br>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 물 흐르듯 지나온 시간 동안...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 잘 버텨온 그 시간 동안...<br><br>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부 2003-13169, 수고했어.<br><br>안.녕.			 ]]> 
		</description>
		<category>短想</category>
		<pubDate>Wed, 30 Jul 2008 15:49:33 GMT</pubDate>
		<dc:creator>蒼天</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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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촛불집회(시위)의 강점과 향후 전개, 대책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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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class="f13">촛불시위의 강점은 무정형성이며, 다주체성(모든 이가 주체라는 의미), 비폭력성과 여론입니다.<br><br>그러나 이 강점은 장점인 동시에 촛불시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에 언제나 두려움과 염려심을 가져왔습니다. 논의를 관통하는&nbsp;전제로서, 연대는 어려우나, 분열은 쉽다는 점을 지적하고 개진합니다. <br><br>첫째로 무정형성은 자율성에서 비롯되어 촛불시위 참여자들의 다원적인 생각을 잘 담아왔습니다만, 결정적으로 목표와 목적, 다음 단계 설정에 필요한 의사 결정에 있어서 장애를 가지고 왔습니다. 더불어 시위 자체가 연대이기 때문에, 앞의 전제에 따르면, 분열에 대한 끝없는 걱정으로 인해서 제대로 된 의사 결정을 구축하기 보다는 두리뭉술한 결정만을 내리고, 세부결정 사항은 임의대로 이뤄지게 놔둘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는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저해시키고, 시위 자체의 역량을 결집시키기 보다는 여러 방향으로 낭비할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br><br>둘째로 여론입니다. 여론은 촛불집회의 기반으로서, 현재의 촛불집회가 이렇게 힘을 얻을 수 있는 기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론은 언제나 가변적이라는 점에서, 든든한 기반이기가 어렵고, 따라서 우리는 이 여론의 향방에 끝없이 주시해야만 하며, 결정적으로 '가상적인 여론의 향방'에 따라서 우리의 의사 결정을 제약받는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게 됩니다. <br>지금 현재의 여론이 촛불집회를 지지하는 것은 두 가지,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촛불집회의 비폭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자 중 하나, 특히 그 중에서도 시위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비폭력이 흔들리게 되면, 언제라도 양비론이 등장하여 여론을 흔들 수 있고, 이는 시위와 집회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br><br>셋째, 다주체성입니다. 다주체성은 모두가 공평하게 동등하게 참여하는 과정에서, 시위대 자체의 합리성을 도출해내는 데 크게 기여해 왔습니다. 그러나 주체마다 연대를 하는 목적과 생각, 동인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이 다주체성으로 인해서 시위나 집회의 성격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다주체성을 비판하거나 부정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다주체성의 지나친 강조로 인해서, 집회나 시위의 주관자 내지는 집행의 편의를 가져올 수 있는 집단을 형성하는 것에 대한 시위대 자체의 부정적인 시각이 생겼고, 이를 통해 여론에서도 그런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사고를 잠재적으로 가지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향후 시위나 집회의 발전방향을 논의함에 있어서 부득이하게 이런 집단을 형성하게 될 경우(10만이 다 모여서 발전방향을 정할 수는 없으므로) 얼마든지 조중동 등에서 이를 좌빨이나 선동단체로 몰아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br><br><br>이렇게 촛불집회의 강점은 어느새 촛불집회의 발전을 저해하고 발목을 잡는 기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촛불집회에 대해 지나치게 순수성(정치적인 부분에서 더더욱)을 강조함으로써, 우리 스스로가 족쇄를 채워버렸기 때문입니다. 광장과 집회는 정치성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음에도 스스로 정치성을 배제하는 듯 하게 출발해버렸고, 정당성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이 순수성을 이용했기에, 우리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치성을 드러내게 될 경우 이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br><br>우리는 편견과 싸워 이겨내야만 합니다. 어렵고 힘든 일일지라도, 이제 촛불집회의 정치성을 드높일 수 있어야 합니다. 더불어 우리가 집회를 통해서 무엇을 원하는지 목적과 목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의 행보에 대해 인터넷이라는 열린 광장에서 토론하고 민의를 모을 필요가 있습니다. 장마철이 오고 있으며, 정부는 강경책에서 유화책으로 언제라도 돌입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얼마든지 양비론 등으로 여론몰이를 할 수 있습니다. 동력을 집결시키고, 역량과 에너지가 외부로 허투로 유출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br><br>지금 우리는 축제를 하고 있지만, 동시에 정치 투쟁을 하고 있음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전자만을 강조하여 정당성을 얻었지만, 후자를 부정하는 즉시 이 촛불집회를 유지하는 동력과 방향을 잃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만 합니다.(시위장에서는 이명박 아웃을 외침에도, 온라인에서는 이 정치성을 부정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nbsp;저는 이 촛불집회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nbsp;모든 것을 지켜보고자 했으며, 지켜볼 것입니다만,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욱 더 유연한 자세라고 할 것입니다.&nbsp;저들은 단지 침묵하기만 하면 되고, 우리는 부단히 움직여야만 합니다.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의 대결에서 알리는 포먼의 강펀치를 정확한 가드로 막으며 포먼이 지치기만을 기다리다 체력이 떨어지자 그 때부터 공세에 나서 승리를 거뒀습니다. 우리의 체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모르겠고, 동력이 무한한지 의문스러운 저로서는, 알리처럼 가드만을 하는 현 정권이 두렵고 또 국민의 동력에 의문을 갖는 제 자신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br><br>꼭 이기고 싶습니다. <br>반드시 승리합시다.&nbsp;&nbsp;<br></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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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短想</category>
		<pubDate>Sat, 07 Jun 2008 17:16:11 GMT</pubDate>
		<dc:creator>蒼天</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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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이 땅의 촛불집회가 나아가야 할 길. ]]> </title>
		<link>http://skyisblue.egloos.com/1917898</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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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농식품부에서 미국 측에 쇠고기 30개월 이상 부분에 대해 수출중단을 미국에 요청했다고 한다. <br><br>자, 진짜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라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br><br>1. 왜 물러났을까?<br>2. 이명박 정권 다른 정책들에 대한 문제<br>3. 이명박 정권의 소통 부재에 대한 문제<br>4. 쇠고기 협상을 통해 본 여론 불수렴으로 인한 비효용 문제<br>5. 연대의 문제<br><br>1. 왜 물러났을까?<br>왜 물러났을까? <br>유감스럽게도 필자는 저들의 저의를 먼저 의심해야 할 만큼 다소간의 의심병이 생긴 듯 하다. 내가 왜 저들 때문에 의심병까지 생겨야 했는지, 생각할수록 분하고 원통하다. 그러나 저들은 무기 하나 없이 오로지 맨손에 촛불 하나 든 이들을 상대로 물대포를 쏘고, 연일 연행을 했으며, 방패로 찍어대고, 그 구시대의 산물인 백골단을 어제, 그제까지 투입했다. 그런 그들이 이렇듯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꿨는데, "아, 이제 우리의 뜻에 귀를 기울이는구나!"라고 안도하는 것은 순진함이라기 보다는 어리석음에 가까울 것이다. (당신에게 매일 때리는 폭력남편, 양아치 친구가 어느날 내 뜻을 받아들여주면, 기쁜가? 아님 다음의 일이, 그 숨겨진 저의가&nbsp;두려운가?) 또 때를 맞춰 6월 4일은 전국 보궐선거가 있는 날이다. 때가 맞아도 이렇게 맞을 수가 없다. 게다가 명문으로 합의해 놓았다가 이제와서 하는 말이 기껏 '요청'이라면 그 저의는 더욱 의심스럽다. 게다가 '한나라당의 요청'이라는 말도 우리가 저들의 저의를 의심하게 만드는 바이기도 하다. <br>물론, 저들이 우리의 의사에 '복종'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strong>절대,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한다</strong>. <br><br>2. 이명박 정권의 다른 정책들에 대한 문제<br>집회를 나가보신 적 있는가? 필자는 6월1일 일요일 집회에 다녀왔었다. 집회에서 구호를 들어보면, 고시철폐-협상무효라는 구호는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 다시 말하면, 집회의 관심을 끌어온 동기가 쇠고기 협상일 수는 있지만, 집회를 크게 만들고 유지해온 동기는 비단 쇠고기 문제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수도 민영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수도 민영화로 수혜를 볼 가장 가능성이 높은 코오롱 워터의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씨라고 한다. 우리 해군의 주요 기술을 갖추고 있던 대우조선이 매각되려할 때, 매입하려던 측은 우리의 조선기술을 탐내고, 잠함기술을 탐낸 중국 측이었으며, 이 중국 회사의 자산관리자가 이명박 대통령의 친척이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건보민영화, 대운하, 각종 민영화 등등 이명박 정권의 다른 정책들은 이미 산적해 있다. 과연 쇠고기 협상에서 저들이 다소 물러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전부일까? 대부분의 주요 정책들은 친기업적인, 소위 '재벌 후렌들리' 정책들이다. 소위 1%를 위한 정책뿐, 그 어디에도 뭇 사람들을 위한 90%를 위한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말 쇠고기 협상만이 문제인가? 가장 긍정적인 시나리오대로,&nbsp;쇠고기 협상을 국민들 뜻대로 (복종?/양보?)한다면, 그들은 다른 정책 문제들에 있어서도 국민들의 뜻에 순순히 (복종?/양보?)할 것인가? 그들이 (복종?/양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새로운 집회를 해야만 하는 것인가?<br><br>(복종?/양보?)로 표기한 것은 복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집회참여자들일 것이지만, 정권의 사람들은 양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br><br>3. 이명박 정권의 소통 부재에 대한 문제<br><strong>이명박 정권의 기본 문제는 소통의 부재이다</strong>. <strong>쇠고기 협상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이다</strong>. 이는 위의 다른 정책들에 대한 문제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데, 이명박 정권의 정책들은 하나같이 정책학 책에 나오는 '동원형'의 유형이다.(정책결정자(소위 윗대가리)들이 정책을 다 정하고 그걸 국민들에게 정치선전 등을 통해 지지를 구하는 방식) 사실 동원형의 기본 맥락은 <strong>엘리트주의</strong>라고 할 수 있다. 일반 국민, 대중들보다 정책결정자들이 더 잘 알고, 더 합리적이므로 그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보다 '나은' 결과를 낫는다는 식의 사고방식인데, 이런 사고는 현대 사회처럼 개인의 개성, 의사가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부합하기가 어렵다.&nbsp;물론 외교정책이라든지, 국방과 같은 극히 전문적이고 자료를 접할 수 있는 사람이 적은 경우(극비가 많은 경우) 엘리트주의적 정책결정에서 자유롭기는 어렵지만, 각종 민영화와 현정권이 추진하는 대부분의 주요 정책들은 국민의 의사가 정책에 있어서&nbsp;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음에도 그런 부분의 고려가 부족하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현정권의 주요 정책들이 <strong>국민의 생활과 너무도 밀접하여, 정책의 영향력과 대상자들이 국민 전반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정부가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채, 엘리트주의적으로 정책을 실행하는 것은 커다란 문제</strong>가 있다고 할 것이다.<br>이는 <strong>이명박 개인의 소영웅주의</strong>와도 맥을 같이 한다. 홀로 자수성가했다는 평가를 받는 CEO로써 이명박은 다른 누구 이상으로 이 소영웅주의적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정권 수립 후 100일 간의 행보는 이 사람이 얼마나 이 소영웅주의에 사로잡혀있는지 익히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런 그가 60평생을 관철해온 소영웅주의를 포기하고 촛불집회를 통해 '소통의 중요성'을 인지했다고 볼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촛불집회의 연이은 강경 진압(그가 중요성을 알았다면, 강경진압을 막았어야 했다), 그의 언행(배후는 누군가? 초는 누가 대주나? 등)을 보건대, 그런 순진한 희망은 말그대로 희망사항일 뿐이다. <br><br>4. 쇠고기 문제로 본 여론 불수렴으로 인한 비효용의 문제<br>이명박 정권을 꿰뚫는 한 단어는 '실용'이다. 그러나 돌이켜 묻건대, <strong>쇠고기 협상은 그 자체가 '비실용, 비효용'이었다. 먼저, 쇠고기 협상 자체도 미국 측에 질질 끌려다닌 초등학생도 마다할 정도의 '비효용'적 협상이었으며, 둘째, 국민에 대해 협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음으로써</strong>,(즉 위에서 언급한 동원형이었음에도 제대로 된 사실, 내용조차도 알리지 않음) <strong>국민스스로가 찾아나섬으로써 만인이 쇠고기 문제에 대한 학위를 받아도 될 정도로 관심과 역량을 집중하게 하여 '비효용'을 낳았으며</strong>(전국민이 쇠고기에 집중해서, 자신의 일 등에 쏟을 시간과 역량을 앗아감)<strong> 셋째로, 줄곧 국민의 의사를 완전히 무시함으로써,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국민들이 광장에 모여서 연일&nbsp;역량을&nbsp;사용하게 함으로써 최악의 '비효용'을 낳았다.<br></strong>만약 제대로 된 '실용'이었다면, 일본처럼, 쇠고기 협상을 우리가 주도하여 하나의 '실용'을 만들어내고,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사실과 내용을 고지하여 둘째의 '비효용'을 제거하며, 그 과정에서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수용하여 셋째의 '비효용'을 제거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현정권은 이런 제과정에서 독단과 아집에 휩싸여 자신의 모토와는 완전히 다른, 아니 그 반대의 '비효용'만 양산했다. 이는 일평생 개인과 사기업의 '사익추구'만을 목적으로 해 온 이의 '실용, 효용'이 국익과 국민 모두를 배려해야하는 배려의 '실용, 효용'과는 완연히 다르다는 점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이기도 하다. <br><br>5. 연대와 문제와 촛불집회의 미래<br><strong>본디 '연대'란 무수히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인간 군상들이 그 중 한 가지 일이나 사안에 대해 동일한 사고를 가질 경우, 그 사고의 목적 여하에 관계없이, 동일한 사고에 기반하여 그 뜻을 이루기 위해 함께 함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strong>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의 사고는 동일할 수 없기 때문에, 한 사안에 대한 동일성으로 뭉치게 되는 것이다. 가령, 지금의 촛불집회만 하더라도, A는 쇠고기 반대, 이명박 반대이지만, B는 쇠고기 반대, 이명박 미정, C는 쇠고기 모호, 강경 진압 반대 등 다른 사고에 의해서도 동일한 행동, 표출을(촛불집회의 형식으로)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자연스럽고 동시에 당연한 연대의 모습이다. (보수 언론 및 혹자는 이런 연대에 대해서 이합집산 등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나와 모든 사안에 대해 동일한 생각을 하는 인간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런 보수 언론 등의 논지에 따르면 연대란 결코 존재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br>그런데 이런 연대의 경우, 치명적인 문제점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것은 연대의 속성과 밀접히 연관된 것으로, 연대하는 이들의 사고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가령, 위에서 C는 강경 진압이 사라지거나 은폐되면, 집회에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현재의 "30월 이상 쇠고기 수출 중지 '요청'"은 이런 연대의 속성이자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연대를 깨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촛불집회는 이런 약점을 지니고 있는 연대의 모습이다. 그래서 필자는 <strong>정권이나 여당, 보수언론의 교묘하고 악랄한 선동과 전략에 이 연대의 결속력이 와해되지 않을까 두렵고 걱정된다. <br></strong><br>현재 이명박 정권이 시행하는 정책들 대부분은 대한민국 1%를 위한 정책이다. 아울러 현재 촛불집회를 구성하는 이들은 대한민국 90%이다. 그런 우리 90%는 1%를 위한 모든 정책들에 대해 우리의 의사를 절실하게, 적확하게, 명확하게 표현해야만 할 것이다. <strong>언제나 우리가 그에 대해서 Veto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그들에게 보다 강력하게, 단결된 의사로 보여주어야만 할 것이다</strong>. 드디어 뭇 사람들이 목놓아 말하듯이, 대한민국은 주식회사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이며, 이 땅의 주인은 국민임을 말이다.<br>이와 같은 촛불집회는 전대미문의 것,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라고 할 것이기에, 그 방향이나 길이 어떻게 될 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필자는 이 나라를 위기에서부터 이만큼으로나마 이끌어 온 이 땅의 시민들을 믿는다. 그 어떤 순간에도 굴하지 않을 이 땅에 사는 모든 이들의 민족성을 믿는다. <br><br>며칠 전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나는 내 친구 녀석에게 자랑스럽게 문자를 한 통 보냈다. <br><strong>"나는 지금 가장 평범한 시민들의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를 보고 있다"</strong><br><br>p.s 대한국민 만세! 민주주의 만세!</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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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短想</category>
		<pubDate>Tue, 03 Jun 2008 04:01:52 GMT</pubDate>
		<dc:creator>蒼天</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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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현 정부의 외교(동북아 정세를 바탕으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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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굴림">오늘은 그동안 생각해왔던 현정부의 외교와 관련하여, 기존의 정부들이 해왔던 외교전략, 정책과 대한민국의 외교 정세를 바탕으로 평가해 보고자 한다. </span><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1. 동북아의 정세</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동북아는 세계에서 가장 특이하고 주목할만한 지역이다. 이 동북아 정세에 개입하고 있는 중국-러시아-북한-한국-일본-미국, 이 6개국은 전 세계 10대 군사강국으로 평가되고 있다. 더불어 중국은 떠오르는 경제대국이자 매년 18%가량의 군비증강을 이뤄내고 있는 한 해 45조 이상의 군사비를 지출하는 군사강국이며, 러시아는 냉전시대의 양대산맥으로, 경제 발전이 더뎌 군사력이 쇠퇴했으나, 최근 천연 가스 등을 비롯한 유전 사업의 발전으로 경제강국, 군사강국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북한은 핵 등 비대칭전력이 극도로 강한 전 세계에서 가장 예측불가능한 국가로, 외교적으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국가이다. 일본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군사강국, 경제강국으로, 일본이 4개를 보유하고 있는 8-8(함정-헬기)함대는 그 중 하나만으로도 대한민국의 해군을 능가한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미국은 중국의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는 군비에 반발하지만, 한 해 450조 이상을 군비로 쓰는 최강대국이다. (게다가 이라크, 아프간 파병은 제외한 금액이다)</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대한민국의 외교적 상황이 보이는가? <strong>동북아 지역은 경제적으로 세계 최고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지역이라, 경제전쟁의 접전지이면서, 군사적으로 가장 치밀하면서도 가장 암묵적인 분쟁이 이뤄지고 있는 뜨거운 감자 중의 하나</strong>이다. 기존의 북한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림팩으로 대두되는 미-일 동맹에, 최근 계속된 군사훈련을 통해 견고해지는 중-러 동맹의 대립까지... 이런 상황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갈 길은 얼마나 멀고도 험한 것이던가. 예전에 누군가가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10만 과학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했으나, 어쩌면 더 필요한 것이 1천의 정예 외교요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만큼 대한민국의 외교적 상황은 특별하다.</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2. 동북아 속의 대한민국 외교(예전-국민의 정부까지)</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그 간의 대한민국의 행적은 어떠했을까? 오랜 예전부터 YS의 문민정부까지 이르는 시기는 오로지 미국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외교의 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특이할만한 일은 공산국가들의 붕괴와 발맞추어 북한과 대화를 어느 정도 시작했다는 점과 대만을 버리고 중국과의 외교 통로를 개척하는 것 정도가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때까지 집권세력들의 성향으로 일본과의 외교는 당연한 귀결이었기에 특이한 점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 외의 모든 외교 행적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대미외교의 부산물 정도에 불과했다. (사실 중국과의 외교 개통도 중국의 UN가입이라는 미국의 조치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기는 하지만)</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그런데 DJ정권 이후로 대한민국의 외교 행적은 다소 상이해졌다. 그 이전까지 동북아정세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외교가 ‘only 미국’이었다면, DJ이후로는 외교의 축이 다극화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중국과의 외교 비중도 다소 커졌고, 햇볕정책 이후로 ‘통미봉남(미국과 통하고 남쪽을 봉한다)’의 북한과의 외교 비중은 상상초월의 수준으로 바뀌었다.&nbsp;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3. 동북아 속의 대한민국 외교(참여정부)</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직전의 노무현 정권은 어떨까? 참여정부 초기에는 중국과의 관계 설정이 무엇보다 외교의 핵심이었다고 생각된다. 참여정부 초기에는 대한민국의 가장 친밀한 친구였던 미국이 다소 의아할 만큼(중국은 미국의 잠재적 주적) <strong>중국과 친밀한 모습을</strong> 보였다. 이는 변화하는 동북아의 정세를 밀접하게 고려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급격히 부상하는 중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동북아 정세의 다극화를 고려하여 기존의 대미외교에만 얽매어 있던 <strong>한국 외교의 유연성을 부여하게</strong> 되었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그리고 대북전략에서는 승계 여부에 논란이 일었던 햇볕정책을 그대로 승계하여, 북한과의 친밀한 관계를 꾸준히 유지함으로써, DJ시절에 이룩했던 화해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고자 노력했고, 이어서 화해의 분위기라는 틀 위에서 협력이라는 새로운 분위기를 창출하고자 노력했다.</span> 그 와중에 <strong>서해교전과 미사일 실험, 심지어 북핵실험 문제까지 붉어져 나왔지만, 대북정책의 기조는 흔들림이 없었다.</strong> (조중동 등 일부는 이를 안전불감증이라고 하지만, 북한과의 친밀한 관계가 가져온 결과물(소위 북풍 등의 안보문제로 국민의 의사를 왜곡시키는 등의 문제가 발생않게 됨)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strong>이런 틀이 있었기에, 북한이 벼랑끝 전술로 내놓은 북핵 문제를, <u>우리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u>,&nbsp;평화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strong></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또한 참여정부는 동북아 균형자론이라는 이름으로 동북아 정세에서 한국이 균형자적 입장을 띔으로서, 외교적 우위를 얻을 수 있는 전략을 제시했다. 쉽게 말하자면, 기존의 동북아 정세가 미,일 - 중,러 식의 경쟁 양상을 띄고 있을 때, 이제까지 한국은 대미전략에 치우쳐 미,일(한) - 중,러(북) 식의 양상을 창출해냈다. 그런데 동북아 균형자론과 햇볕정책을 통한 친북한 전략, 그리고 친중국 전략을 통해 동북아 정세에서 한국은 <strong>미,일 - 한국 - 중,러,북</strong></span><strong> </strong><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trong>식의 양상을 창출해냄으로써</strong>, 6자회담을 이끌어내는 계기를 만들어냈고, 동시에 6자회담에서 균형자이자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통해 외교적 지분을 스스로 창출해냈고, 얻어냈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이를 통해 <strong>대한민국은 동북아 외교 정세의 균형자적 지분을 얻어냈다고 생각한다</strong>. <strong>균형자라는 말이 단순히 봉건제 시절의 ‘중앙권력’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에 해당하지는 않을 것이나, 대립하는 양대세력 사이에서 무게의 균형을 조절할 수 있는 지분을 가진 ‘캐스팅보트’의 의미라면 당시 우리는 충분히 그 역할을 수행해냈다고 생각한다. </strong></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이후, 한미FTA와 함께 참여정부는 취임 초기와의 외교노선과는 다소 상이한 외교전략을 취하게 된다. 당시 중국이 대한민국과의 FTA를 고대했던 점을 고려하면, 중국과의 fTA를 포기하고, ‘말많은’ 미국과의 fTA를 계획하고 추진한 배경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언급하기 어려운 것이, 미국과의 FTA 추진이 미국에서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이었는지, 동북아 정세와 관련하여 외교, 국방적 이익을 도모한 것이었는지 쉽사리 단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참고로 필자는 한미FTA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럼에도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한미관계가 급속히 발전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뉴욕포스트는 노무현은 예측할 수 없는 리더였지만, 그의 시절에 동맹이 강화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다만, 놀라운 점은 중국의 반응인데, <strong>한미 FTA 등을 비롯한 대미동맹의 강화에도 중국이 크게 반응을 보이거나 걱정한 흔적이 없다는</strong> 점이다.(이명박의 친미 성향에 당선인 시절부터 중국이 걱정했던 것과 비교하면..) 그 동안 쌓아왔던 친중국 전략의 결실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일본의 경우, 참여정부 시절의 주요 외교대상국은 아니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정치인들의 독도 망언으로 시작해, 왜곡된 역사교과서와 독도 조사 사업까지 터지면서 한일외교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점이 어떤 문제를 일으켰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동아시아 외교의 두 축은 미국과 중국이다. 한-미 동맹은 반세기 이상을 자랑하는 기반을 갖추고 있고, 중국에게는 침략 역사가 있고, 영토 분쟁이 있는 일본보다 한국이 보다 편한 외교 상대국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본과의 외교는 한국으로서는 급한 상황이 아니었다. 도리어 일본의 경우, 6자 회담에서 북한이 가장 꺼리는 대화 상대국으로 찍혀, 동북아 정세에서 가장 손해를 본 국가가 되었다. (이런 점에는, 미국의 의사에 일본이 극단적인 반발을 표할 리 없다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의 외교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이런 상황을 연출해낸 참여정부 시절의 외교정책은 합격점 이상의 점수를 받을만하다. 동북아의 중추인 미국, 중국 양자 모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가장 예측 불가능한 북한 역시 잘 다룸으로써, 동북아 외교 정세에서 큰 수확하였기 때문이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4. 현재의 대한민국 외교 상황</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굴림"></span><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이명박 대통령(이하 이명박)의 경우, 친미성향이 경선 시절부터 우려되었다. 이에 당선인이 되고 난 이후, 중국은 한국을 외교상대국 지위를 한 단계 더 상승시키려는 계획을 마련하기도 했다. 북한의 경우는, 지속적으로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대북전략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미국과 일본은 한쪽에서 웃음을 감추고 있었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4.1 대북외교</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trong>북한과의 분쟁, 알력은 이미 예상된 결과였다</strong>. 북한은 줄곧 한나라당과 이명박에 우려를 표해왔고, 한동안 보기 어려웠던 비난방송과 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개성공단을 비롯한 휴전선 이북에서 공무원들은 모두 쫓겨나기에 이르렀고, NLL을 둘러싸고 조용할 날이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이런 와중에 북한은 가장 우려했던 ‘통미봉남’ 전략을 다시 시행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한국이 각종 조건을 달며 식량지원을 등한히 하는 사이에, 미국은 북한에 직접적으로 식량지원을 하게 되었고, 북한 역시 맘에 안 드는 한국이라는 친구에 구태여 손 벌릴 필요가 없게 되었는데, 이는 식량지원을 카드로 외교적 우위를 꾀하고자 했던 한국의 대북전략에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왔다. (정권이 베스트 프렌드라고 말하던 미국에게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4.2 중국외교</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중국과의 외교 역시 문제가 많다. 중국이 이명박에 대해 깊은 우려를 해왔다는 점은 이미 언급했다. 이명박의 친미 성향은 DJ와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쌓아 온 한-중 외교의 성과를 흔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중국으로서는 동북아에서 입지를 굳히기 위해, 한국과의 친밀한 외교가 필수적이다. 특히 올해 중국은 말 많고 탈 많은 국제적 행사인 올림픽을 북경에서 치르기에 더욱 필수적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명박은 대북외교에서 DJ, 노무현 정권과는 다른 접근법을 들고 나왔고, 중국은 이 정권이 과거와는 다름을 인식했을 것이다. 이후 이명박은 첫 순방국으로 미국-일본을 정하는 한편, 쇠고기 협상을 타결하고, FTA 비준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strong>중국이 우려하던 친미적 성향을 유감없이 뽐냈다</strong>.(대북강경책의 와중에 친미정책이 펼쳐졌으니, 중국의 입장이라면?)&nbsp;당시 중국은 티벳 사건으로 세계적으로 압박을 받는 상황이라 외교 상대국이 절실했었다. 아마도 한국과 일본이 그 타깃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후진따오는 일본을 선택했다. (참고로, 중-일은 올해 초, 농약만두와 일본 기자의 스파이 파동으로 반일-반중 감정이 극도로 치닫는가 하면, 후진따오의 일본행을 중국에서는 극도로 만류했었다고 한다) 아마도 참여정부였다면, 외교적 고립에 빠질 수 있었던 중국의 순방국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 아니었을까?</span> 그리고 구원투수로 등장할 한국은 중국과의 외교에서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지 않았을까?</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4.3 일본외교</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trong>이명박은 일본에서 천황을 천황이라 칭하고(이제껏 일왕이라 칭함), 목례를 하면서, 과거의 일을 덮어두자는 식의 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었다. 그의 실용에 따르면, 물의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는 반(反)실용이라고 할 것이다.</strong> 참여정부의 외교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일본에 굳이 목 매달릴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명박은 스스로 일본으로 건너가, 우리와 외교 관계를 돈독히 해줄 것을 요청했다. 쉽게 말해, 우리가 가지고 있거나 적어도 뺏기지 않았던 <strong>주도권을 일본에게 넘겨준 것이다.</strong> 그것도 언제라도 꺼내어 일본의 외교 전략에 딴죽을 걸 수 있는 역사 문제, 독도 문제라는 히든카드마저 넘겨준 채 말이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4.4 미국외교</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미국과의 외교는 굴종의 외교라는 말 외에 더할 말이 없다. 졸속으로 치룬 쇠고기 협상은 말할 나위도 없고, 교황이 미국에 방문하는 시점에 같이 방문하는 ‘뇌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방문일자로 미국에 과연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왔을지도 의문스럽다. 아니, 어찌 생각해보면, 미국과 미국민에 큰 영향을 못 행사하고 온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4.5 동북아 정세의 변화</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참여정부 시절, 한국은 캐스팅 보트를 쥔 국가였다. 미,일-한-중,러,북 상황에서 미국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통로로 이용하기에 유용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 일본에 보다 친밀한 모습을 보여, 미,일,한-중,러,북 식의 양상이 된다면, 그리하여 한국을 거치고 얘기하는 것이나 거치지 않고 직접 얘기하는 것이나 동일하다면, 중국이나 북한이 구태여 한국을 통로로 거칠 필요가 없다. 미국 역시 한국의 존재를 크게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된다. (중-한 관계가 중-미 관계보다 더 돈독하다면, 중국으로서는 직접 껄끄러운 미국을 상대하는 것보다 미국과 친하면서 자신과도 친한 한국에게 입장을 설명하여 양자의 협상을 이끌어내는 촉매로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이런 역학에도 이명박 정부는 후자의 경우를 택했고, 그 결과로 중국은 대화상대자로 한국이 아닌 일본을 택했고,(일본이 한국보다 미국과 친밀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동북아에서의 지분도 일본이 크니, 중국 입장에서는 중-한, 중-일 관계가 동등하다면, 한국보다 일본이 더 매력적인 상대국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미 속내를 다 보인 한국의 사정을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더불어 북한은 중국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상태에서, 한국이 아닌 미국과의 대화에 전력투구를 하며, 어렵게 구축해놓은 다자회담(6자회담)의 방식이 아닌 북-미 양자회담의 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strong>한국은 어렵게 유지해온 ‘캐스팅보트’의 지위와 지분을 상실했다. </strong></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이명박 정부의 외교전략은 거의 재앙 수준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냉전 속에서 스위스가 취했던 외교적 이익을 꿈꾸어야 했음에도, 스스로 그 역할과 지위를 차버렸다. 덕분에 대한민국이 동북아 외교 정세에서 얻어낼 발언권은 현격히 떨어졌고, 지위는 ‘대한민국’에서 ‘미국 측’으로 격하되었다. <strong>외교란, 국가 간의 인간관계라고</strong> 볼 수 있다. 물론 계산이 주가 되기에, 우정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사회생활 속에서 흔히 하는 인간관계 정도로 이해한다면, <strong>그 속에서 신뢰를 쌓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한편으로 신뢰를 잃는 것이 얼마나 쉬운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strong> 또, 지금의 지위를 유지하는 일도 얼마나 벅찬 것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strong>우리는 어렵게 쌓아왔던 신뢰를 스스로 차버렸고, 어렵게 일구어낸 지위와 지분을 스스로 포기했다.</strong> 이제 앞으로 스스로 포기했던 것들을 다시 쌓아가야 하는데, 얼마나 어렵고 힘든 과정이 될지 걱정과 아쉬움이 가득할 뿐이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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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短想</category>
		<pubDate>Sat, 17 May 2008 16:14:17 GMT</pubDate>
		<dc:creator>蒼天</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임경완 선수를 응원합니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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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class="f13">오늘 롯데가 졌군요.<br><br>먼저 오늘 극성스런 분위기 때문에 수훈인터뷰조차 못했던 우리 히어로즈와 그 팬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승리 축하드립니다. <br><br>오늘은 임경완 선수에 대해서 얘길 좀 하고 싶습니다. <br>오늘 임경완 선수 평소처럼 엄청난 양의 땀을 흘리고 있더군요.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떨고 있었고, 흔들리고 있더군요. 굳이 마음 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알 수 있을만큼, 가까이 있지 않아도 알 수 있을만큼...<br><br>누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요??<br>난 우리 롯데팬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믿습니다. 단순히 오물을 투척한 '일부' 팬들뿐만이 아니라, 미니홈피에 갈 생각도 안 하지만, 롯데를 아끼는 나를 비롯한 일반 팬들조차도 그를 그렇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믿습니다. <br>실수하면, 소심하다고 소위 말해 '까고', 볼넷주면 (커맨드가 안 잡혀서) 장작모은다고 '까고', 우리 팬들이 하는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이기면 '내가' 이긴 것처럼 마냥 기뻐하고, 지면 내 '기대'와 '응원'과 '시간'을 배신했다고 까고 있지는 않던가요?...(유감스럽게도 제 모습 중 하나였습니다)<br>물론 그것이 아쉬움의 발로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가지고 있는 작은 애정의 표현임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롯데를 사랑하지만, 그들은 바로 '롯데' 그 자체입니다. 과연 그들의 애정이 우리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 단언할 수 없을 겁니다. 그들이 바로 자신인 (매번 개인타이틀보다 가을의 야구를 이야기하는) 롯데를 아마 우리보다 더 사랑할 겁니다. 88885777과 같은 암흑과 같은 시절에 나와 같은 쭉정이 팬은 고개를 돌렸고, 사직엔 고작 수백의 관중뿐이었지만, 그들은 '꼴데'라는 비웃음과 비아냥 속에서도 롯데와 함께 뛰고 있었습니다. <br><br>전 롯데와 내가 함께 늙어가며, 함께 웃고, 울고 즐기기를 원합니다. 유망주는 내 동생같고, 손민한은 듬직한 형같으며, 이대호는 더할 나위없는 내 벗 같습니다. 나 역시 아쉽고 짜증납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과연 그들이 실수할 때, 특히나 롯데의 숙원과도 같은 마무리 자리를 맡은 임경완이 흔들릴 때, 내가 그에게, 내 아버지가 내게 해주듯이, 묵묵히 지켜보면서 힘을 주었던 적이 있는지 반성해봅니다. 하루하루에 일희일비하며, 하루하루에 그에 대한 나의 태도와 말을 바꾸었던게 아닌가 반성해봅니다. <br>나는 오늘 임경완 선수가, 롯데의 한 선수가, 한 야구선수가, 한 인간이 얼마나 자신에게 자괴감을 가지고 있을지 상상해보고 있습니다. 한 때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가졌던 이로서, 그 고통과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그런 그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손에 닿을 듯 합니다. <br><br>힘든 시절에도 롯데와 함께 해왔을 롯데 팬분들, 당신의 아쉬움, 당신의 애정을 부족한 나의 통찰로 채 다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조금만 침착해보고, 조금만 애정어린 눈빛'만'으로 한 야구선수를 응원해봅시다. 나는 오늘 한 야구선수가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야구를 통해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br><br>나는 임경완 선수를 응원합니다. 반드시 이겨내시고, 반드시 3만 관중 앞에서 롯데의 상징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br></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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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感想</category>
		<pubDate>Fri, 16 May 2008 14:57:12 GMT</pubDate>
		<dc:creator>蒼天</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과대포장이라고, 선동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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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trong>'선동가가 설치고 있다'&nbsp;-----------&gt;&nbsp;&nbsp; '나라가 미쳐 날뛴다'</strong><br><br><br>요즘 이 땅에 많은 말(說)들이 나돌고 있다. 제목 밑에 뚜렷이 써있는 저 말은 요즘 보수 언론, 정권에서 주야장천 해대는 말이다. 일견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일견 거짓일 수 있다. 인간은 거의 대부분 일정 정도의 정신병적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를 정신병으로 판단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나마 정신병은 정신병 전문의라는 전문적 직함을 가진 이들이 판단하게 함으로써, 일견 사회적 수긍을 얻는다. (물론, 정신병의 사회적 수긍은 전문의의 권위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정신병자를 경원시하기 때문이지만, 이는 주내용이 아니므로 생략한다) <strong>그러나 사회 문제나 현상의 경우 이것이 과장된 것인지, 되려 과소한 것인지, 되려 정상인 것인지의 평가는 쉽게 할 수 없다.</strong> 아니, 누구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지 모르겠다.&nbsp;혹자의 눈에 청계천에 몰린 촛불시위대는 '미쳐 날뛰는&nbsp;군중'들로 보이겠지만, 혹자의 눈에는&nbsp;'진정한 민주주의'의 발호일지도 모른다.&nbsp;이에 대해 단언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사람일 것이다. 왜냐,&nbsp;단언할 수 없는 것을 단언하는 자는 무식하거나 사기꾼이거나 혹은&nbsp;비이성적 신념(이성으로 쉽게 설명되지 않는 신념)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이다.<br><br><br>자&nbsp;위의 제목 밑에 있는 굵은 글씨를 한 번 보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말 아닌가? 생각이 잘 나지 않나?(Hint : 1980년 5월&nbsp;18일 즈음하여 전국 각지의 신문이 저와 유사한 말을 보도했다)<br><br><strong>'간첩들이 설치고 있다' ------------&gt; '(간첩들의 선동으로) 광주가 미쳐 날뛴다'</strong><br><br>자, 이제 떠오르는가? 그렇다. 유감스럽게도 저 말은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을 격하하면서 군부정권이 전국에 '광주사태'를 설명한 문언 그대로다.&nbsp;광주에서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죽어갈 때, 내 고향 영남에서는 광주에 간첩이 들었단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다. 지역감정 탓이리라. 그리고 그들 중 나이드신 분들 중 다수는 지역감정 덕분에 아직도 그렇게 믿고 계신다. 그런 이들은 영남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전국 대부분이 그 말을 믿었으리라, 적어도 당시는. 그리고 그 덕택에 광주 전남도청 앞에서는 무고한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strong>전국의 다른 사람들이 '냉/정/을/ 찾/자/고/말/하/는/순/간/에' 말이다.<br></strong><br><br>오늘 우리는 그와 똑같은 현상을 눈앞에서<strong> </strong>목도하고 있다. <br>중도나 진보를 지지하는 몇몇 블로거들 역시&nbsp;국민들의 행동에 대해 심각히 염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nbsp;그들의 눈에는 황우석이 보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마도 몇몇은 황우석을 분명히 연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 나는 다른 면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그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이 일종의 Event성 사건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명백히 다르게 보고 있다. <strong>현재 벌어지고 있는&nbsp;일련의 상황은 결코 일종의 Event성 사건이 아니며, 고작 2개월 동안 다른 정권들이 정권 내내 할 실정들을 거듭해 온 이명박 정부에 대해 축적된 분노와 감정의 표출이다.</strong> 다만 그것이 광우병 사태를 기점으로 표출된 것일 뿐이다.&nbsp;(국민들은 2개월동안 오렌지 에피소드로 시작한 영어몰입교육을 기점으로, 강부자 고소영 내각, 0교시와 우열반, 대운하, 건보 민영화, 쇠고기 협상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을 모두 참아왔다.&nbsp;실소만 자아내는 오렌지로 이미 혈압이 상승했고,&nbsp;어처구니 없는 인사와 부자정부(사회에 있어서의 양극화), 교육에 있어서의 양극화를 인내했고, 심지어 국토를 두동강 내는 대운하에 대해서도 인내했다. 그러다&nbsp;가족이 '아프면' 끝장나는 건보 민영화에서 들끓기 시작했고, 이제는 '아프게 해주겠다'는 쇠고기 협상에서 폭발한 것일 뿐이다.)&nbsp;<br><br>그들의 말처럼 광우병의 위험이 과대포장되어 넷상을 떠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strong>과대포장된 위험만이 지금 현재의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생각이라고 할 것이다.</strong>&nbsp;<strong>게다가 과대포장되었다고 하는 위험의 내부에 우리는 Fact를 구축하고 있다.</strong> (지금 들끓고 있는 국민들이 하등의 Fact에도 의존하지 않고 단순히 과장된 위험에만 충동질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체 국민들을 어느 정도로 우습게 아는 것인가? 지금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0.1% 정도밖에 안 된다. 나름의 지식과 행동력을 갖추고 움직이고 있다. 얼마나 우월하기에 그들을 '과대포장된 위험'이나 '군중심리'에 충동질되었다고 말하는 것인가?)&nbsp;더불어 알고 있는가? 황우석 사태때도 사람들은 황우석이 '만들어낸 거짓된' Fact에 열광했다. Fact 없이는 설명력도 없고, 정당성 역시&nbsp;구축될 수 없다. <strong>지금 이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바로 그 Fact다. <br></strong><br>분명히 걸러내고 싶은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차후의 일이다.<strong> 우리가 우선해야 할 것은 쇠고기 재협상이지,&nbsp;광우병 위험 중 과대포장된 부분을 걸러내는 과정이 아니다.</strong> 그것은 재협상이 결정된 뒤에도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strong>국가 간 협상이 끝난 것을 재협상으로 이끌고 가는 것은 지금 결집된 민의 없이는 불가능하다.</strong> 무엇이 우선인가? 머리를 식히자고?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이 얼마나 졸속으로 이루어졌는지 모르고 하는 말인가? <br><br><br><strong>조중동이나 한나라당에서 '과대포장된 위험이나 군중심리에 의해 사람들이 좌우되고 있다'라고 하는 말은 이 나라의 국민들을 무시하고 모독하는 언사에 불과하다.</strong> 그들은 자신들을 지지해줄 때는 영명한 국민들이 자신들의 반대편에 서면 '우민'으로 변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블로거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전하고 싶다. 국민들은, 그것도 자신의 주말을 반납하면서 거리에 나와 움직일 정도의 국민들이라면, 충분히 어느 정도의 지식과 자신의 주체적인 사고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 점을 충분히 고려한 다음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 생각한다. 탄핵 때도 촛불시위가 많이 있었지만, 효순이 미선이 사건때는 무려 10만이 넘는 인원이 참가했었지만, 선동이라는 말이 쓰여지지 않았다. (물론 조중동 열외) <br><br><br><br>첨언) 사실 필자의 견해는 이것보다 좀 더 나아간다. 나는 심지어 어린 학생들이 나온다한들 그게 무엇이 해로운지 인식하지 못하겠다. 가끔 예전에 썼던 글들을 돌이켜보면, 나의 글이나 언행, 행동이 모자라고 부족해서 부끄러울 때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그 때일 뿐, 지금은 그 부끄러움을 바탕으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 애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학생들에게 이런 경험은 돈으로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발한다. 우리나라처럼 척박한 교육 환경에서 '봉사활동 이후에 시위에 참가할 거에요'라고 말한 학생은 가히 대단해보일 정도다. 시위에 참가한다는 것, 그것이 축제의 형태든 집회의 형태든, 그 자체로 그 학생은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경험하고 있는데, 무엇이 해롭고, 무엇이 문제가 될지 의문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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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短想</category>
		<pubDate>Sat, 03 May 2008 16:22:23 GMT</pubDate>
		<dc:creator>蒼天</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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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펌)PD수첩 "조중동, 우리는 당신들처럼 말 안바꾼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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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class="f13"><b>PD수첩 "조중동, 우리는 당신들처럼 말 안바꾼다"</b><br><br>13일 후속편 방송키로, 한나라당 비난도 조목조목 반박광우병 보도로 파란을 일으킨 MBC PD수첩이 2일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맹비난에 조목조목 반박하며 오는 13일 광우병 후속편을 방영하겠다며 정면 대응에 나섰다. <br><br>조능희 &lt; PD수첩&gt; 책임PD(CP)는 2일 미디오오늘과 인터뷰에서 조선일보가 이날자 사설을 통해 PD수첩특정한 의도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비난한 데 대해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언론사에서 사설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일단 팩트부터 틀렸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사육소 100만 마리 가운데 광우병 소 30여 마리가 발견된 일본의 광우병 발생비율이 미국보다 비교할 수 없이 높다'고 했다. 그런데 일본은 전수검사, 모든 소를 조사한다. 그래서 30여 마리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사육소 1억 마리를 전부 조사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프로그램에서 미국이 사육소 0.1%만 조사한다고 했다. 이 사설을 쓴 사람이야말로 팩트를 조작하면서 축소시키는 사람이다. 이런 식으로 &lt; PD수첩&gt;을 폄하하는가. 같은 언론인이라는 것이 부끄럽다"고 일갈했다. <br><br>그는 동아일보의 비판에 대해서도 "동아일보도 한국인 유전자 취약부분을 말하는데, 그것은 주간동아나 과학동아에서 이미 나온 팩트들이다.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br><br>그는 한나라당의 PD수첩 맹비난에 대해서도 "프로그램에서 안정성 문제만 얘기했는데 안정성을 지적하면 반미가 되고 반이명박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부풀린 것도 없고 팩트만 얘기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한나라당도 이해할 수 없는 게 (야당시절인) 지난해 8월만 해도 미 쇠고기 금수조치를 내리고 관련협상을 당장 중단하라고 그랬다"라며 "정치인이니까 정치적인 해석을 하겠지만, PD수첩은 정치를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라고 힐난했다. <br><br>그는 이어 "우리가 시청자를 선동하고 혹세무민한다고 그랬는데 방송에서 나오지 않은 이야기가 돌아다니는 것은 그들 책임이다. 여태껏 광우병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 아니가"라고 반문한 뒤 "조선동아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자신들이 쓴 광우병 관련사설이 여기 다 있다. 노무현 정부가 국민을 담보로 삼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나. 과연 누가 선동하고 누가 혹세무민하는 것인지 정확히 봤으면 좋겠다"라고 힐난했다. <br><br>그는 "PD수첩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난 정권부터 지금까지 견제해 온 게 뚜렷하다"며 "정권이 바뀐다고 조중동처럼 하던 말 안하고, 안 하던 말 하지 않는다. 시청자들을 위해서, 시청자가 원하는 것을 방송할 뿐"이라고 조중동을 질타했다. <br><br>--------------<br><br>MBC최고다.. 이런 방송이 유사이래 있었던가? 황우석 건부터 PD수첩을 지지했지만, 권력 앞에서도 흐트러짐이 없는 요즘의 태도에 더할 수 없이 만족감을 느낀다. 다원성을 극한으로 표방할 수 있는 것이 시장이라 했던가. 시장에서 MBC가 영원히 이 기조를 변치 않길 바란다. 설사 비판을 위한 비판일지라도, 찬양 일색보다 훨씬 값지지 아니한가.</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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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短想</category>
		<pubDate>Sat, 03 May 2008 12:32:59 GMT</pubDate>
		<dc:creator>蒼天</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펌)진중권 칼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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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반이(反李) 좀 하면 안 되나?"<br>프레시안 | 기사입력 2008.05.03 19:07 | 최종수정 2008.05.03 19:17<br><br><br><br>[진중권 칼럼] 반美? 반李! <br><br>[프레시안 진중권/중앙대 겸임교수] <br>어용언론의 전형을 보여주는 &lt; 동아일보 &gt; 가 촛불시위를 '반미반이'라 불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반미'는 아닌 것 같다. 시위 현장에서 반미 구호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반이'는 맞는 것 같다. 그 자리에서 터져 나온 구호의 대부분은 '반 이명박'이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왜 반이를 외치는가? 그 자리에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들의 욕망은 무엇인가? <br><br>탄핵 서명을 받기 위한 문안에도 나와 있듯이, 광우병 쇠고기 문제는 탄핵의 사유로 거론된 것 중의 하나일 뿐. 시민의 분노는 정부여당이 인수위 시절부터 해왔던 실정, 종종 사람을 어이없게 만드는 대통령 자신의 몰상식한 언행을 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위는 '반이'다. 그런데 반이(反李) 좀 하면 안 되나? <br><br>대중은 대통령을 탄핵하자고 외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수사학적 표현이지, 정말로 대중이 탄핵을 위한 절차를 밟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탄핵'이라는 말은 이명박 정권의 통치에 대한 대중의 거부를 담은 상징적 표현일 뿐이다. 대중은 마치 미국소를 먹으면 다 광우병에 걸릴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에 대한 과학적 기술이 아니라, 답답한 현실에 대한 정서적 표출일 뿐이다. 뜨거운 분노 속에서도 이 두 가지 차원을 구별하는 냉정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광우병의 위험을 불필요하게 과장할 때, 조ㆍ중ㆍ동과 같은 보수언론에게 쓸 데 없이 빌미만 주게 된다. 수사적 과장을 사용하는 구호를, 현실에 대한 기술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br><br>확실한 것은 광우병이 지극히 위험한 질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병을 막기 위해서 수입되는 쇠고기에 대해 정부는 최대한의 보호 장치를 마련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불과 몇 달 사이에 미국 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180도 바뀌었다. 미국 쇠고기 수입의 조건에 관한 한나라당의 입장도 불과 몇 달 사이에 180도로 바뀌었다. <br><br>나아가 7년 전 광우병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정부에 철저한 대비를 요구했던 &lt; 조선일보 &gt; 의 태도도 180도로 달라졌다. 하지만 그 사이에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학계의 견해가 달라졌던가? 그 사이에 달라진 것은 '정권'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전면 개방이 과학에 근거한 게 아니라, 정치에 근거한 조치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br><br>현 정권이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국민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안전성을 최대화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어떤 납득할 수 없는 이유에서 지난해까지 유지되어 왔던 자신의 입장을 180도로 뒤집고, 미국 측에 전면 개방에 동의해주었다. 대중의 분노는 여기서 비롯된다. 즉 당연히 자신을 지켜 주리라 믿었던 정부가 외려 자신들을 더 많은 위험에 노출시켰다는 데에 분노하는 것이다. <br><br>광우병의 위험이 존재한다면, 가능한 한 그 발생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어떤 다른 이유(그것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 타결이든, 한미동맹을 과시해야 하는 이명박 정권의 처지든)에서 작년까지도 유지해 왔던 자신의 원칙을 희생시켰다. 이것은 충분히 분노할 이유가 된다. <br><br>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이제 수입 조건을 더 엄격하게 하기 위한 재협상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권이 이미 일을 저질러 버렸기 때문에, 재협상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야 정치권에서 재협상을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대중이 분노하지 않았다면, 그 정도의 제스처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br><br>날림 정권에서 날림으로 체결한 협정이니, 그 안에 빈틈은 없는지 꼼꼼히 검토하여, 하자가 발견되면 그것을 보완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대중은 제 몫을 했고, 이제 각계의 전문가들이 나서서 찬반양론의 토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나가면서 이 분노의 물결이 합리적인 통로로 흐르도록 채널화해 줘야 한다. <br><br>아마도 대미 수출의 극대화라는 시장주의 이념(그리고 한미동맹의 과시라는 정치적 이념) 때문에 이 정권은 국민의 생명권이 걸린 문제마저도 매우 신속하게, 그러다 보니 매우 안이하게 처리했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현 정권의 두뇌에 걸린 질병의 실체를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현 정권은 돈을 위해서는 다른 가치들은 모두 희생되어도 좋다는, 거의 시장주의 탈레반의 의식을 갖고 있다. <br><br>쇠고기 협상이 날림으로 이루어진 것도, 바로 그 보편적 날림 공사의 특수한 예일 뿐이다. 대중이 탄핵의 사유로 쇠고기 문제와 영어몰입교육, 대운하건설 등을 든 것은 대중들 스스로 이 점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분노는 쇠고기 문제를 넘어 다른 영역에서도 나타나는 병증을 진단하고 치유하기 위한 합리적 논의와 민주적 토론으로 발전해야 한다. <br><br>대중은 쇠고기 앞에서만 불안을 느끼는 게 아니다. 정권을 잡은 시장주의 탈레반들이 국민의 생명권, 교육의 공공성, 생태와 환경 등,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들을 가차 없이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데에 대한 두려움. 그렇게 날림으로 지은 국가라는 건물이 IMF 때처럼 와르르 무너질지 모른다는 데에 대한 불안감. 도대체 저들이 만들어낼 나라에 어떻게 우리의 아이들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는 공포감. 이것이 그들을 촛불집회로 데려온 것이다. <br><br>'반이'는 그저 이명박이라는 개인에 대한 반감이 아니다. '반이'는 파란 쫄티에 붉은 색으로 S자 써 붙이고 나타나 나라를 구하겠다고 하는 개그 영웅에 대한 반감도 아니다. '반이'는 이명박이라는 개인이 그 화신의 역할을 하는 과격한 시장주의 이념, 거기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부패한 권력 집단에 대한 거부다. <br><br>정권에서는 이번 시위의 배후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말한다. 우스운 얘기다. 시위 현장의 분위기를 얘기하자면, 민주당 얘기는 꺼냈다가는 차가운 눈총의 세례를 받아야 할 상황이다. 또 진보신당에 몸을 담은 입장에서 말하자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이렇게 큰 시위를 일으킬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 불행히도 우리도 대중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그리하여 나도 진보신당 게시판에 "이번에는 조용히 대중의 지도를 따르자. 그것이 민주주의다"라는 글을 남기고 시위 현장에 나왔다. 누리꾼이 주도한 어제 시위 현장에는 태극기 이외에는 정당이나 단체의 이름을 내건 깃발은 단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다. <br><br>이번 사태를 그저, 학교 괴담 좋아하는 초등학생들처럼 쇠고기 괴담이나 유포하는 대중들의 유치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파악한다면, 그 역시 큰 오산이다. 이번에 대중들은 분노를 축제로 승화시켰다. 애국의 광기에 빠져 떼를 지어 몰려다니면서 이견을 가진 자에게 린치를 가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매우 성숙하게 행동하고 있다. <br><br>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탄핵서명은 82만을 넘었다. 물론 이 현실에 눈을 감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이상한 색칠을 해서 제 편할 대로 이해하고 싶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런 움직임 밑에 깔려 있는 대중의 욕망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앞으로 5년 동안 제대로 정부 노릇 하기 힘들 것이다. 도대체 집권 두 달 만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br><br>진중권/중앙대 겸임교수 ( tyio@pressian.com ) <br><br>------------<br><br>말솜씨보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후덜덜한 글솜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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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短想</category>
		<pubDate>Sat, 03 May 2008 12:27:08 GMT</pubDate>
		<dc:creator>蒼天</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친일파 명단 공개와 정부, 여당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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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strong>이명박 대통령 "공과를 따져보자"<br>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친일파 명단에 "과거를 지나치게 후벼파는 일은 미래로 가는 길을 막는다"</strong><br><br>신상필벌과 같은 맥락에서 아마도 발화자는 떳떳한 마음으로 이 말을 거리낌없이 했으리라. 그러나 난 공과를 평가하는 일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이 있다. 그 의문에 대해 뭇 사람들의 대답을 듣고 싶기에 이 포스트를 작성해본다. <br><br>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같은 맥락에서 사람은 아는 만큼 생각할 수 있고, 생각의 틀은 그가 가진 앎의 범위를 초과하지 못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런 탓에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각종 성공한 사람들도 입을 모아 말하지 않던가. 독서하라고. 여하간 이렇게 사람은 아는 만큼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생각을 좌우하는 것은 단지 앎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무슨 말인고 하면, 이제까지 내가 언급한 앎을 넘어선 무언가가 사람의 사고에 영향을 준다는 말이다. 가령, 홍수가 나서 '돈과 낯선 사람,&nbsp;애완견'이 물에 떠내려 가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구할 시간이 부족하고 태울 장소가 협소하여 그 중 하나만 얻을 수 있다고 해보자. 이 경우, 사람들마다 구해야 할 '것'에 대해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혹자는 돈을, 혹자는 사람을, 혹자는 애완견을 선택해서 구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 차이를 가져오는 것일까? 바로 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이다. 돈을 선택한 사람은, 돈이 다른 것보다 더 가치있다고, 낯선 사람을 선택한 사람은 애완견이나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식으로 말이다. 돈을 선택하든, 애완견을 선택하든 한 사람도 학교나 책에서 '사람의 목숨과 가치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식의 교육을 배워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돈이나 애완견을 선택한 것은 자신의 '앎'을 넘어선 '가치지향'이 있음에 달려있는 것이다. <br>이렇게 보면, <strong>결국 사람의 행동이란, '앎'을 기초로 그 위에 '가치평가(지향)'이 개입되어 형성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br></strong><br>자, 이런 전제에서 공과를 평가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자.<br>&nbsp;<br>이제까지 필자는 사람의 행위가 '앎'과 '가치지향(평가)' 위에 서 있다는 말을 해왔다. 공과 과를 평가하는 행위 역시 사람의 행위임은 말할 나위가 없고, 그렇다면 공과 과를 평가하는 일 역시 평가자의 '앎'과 '가치지향(평가)' 위에 서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보면 이것이 가진 문제를 어느 정도는 감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br>사람은 각기 다른&nbsp; '가치지향(평가)'을 가지고 있다. 똑같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도 누군가는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콧방귀를 끼며 시시하다는 혹평을 내리곤 한다. 이런 면은 공과 과를 평가함에 있어서도 얼마든지 반영된다. <strong>혹자는 공을 더 크게 보고 혹자는 과를 더 크게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br></strong><br>공과를 균형있게 봐야 한다는 말에서 기왕의 평가가 '객관성' 내지는 '공정성'이 없다는 것을 비판하는 뉘앙스가 물씬 풍긴다.<br><strong>그렇다면 이번엔 객관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strong>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객관적인' 양 말하곤 한다. 특히 '솔직히' '객관적으로' '진정으로' 등등의 수사를 쓸 때는 그 사람이 이 '객관적인' 이라는 환상에 얼마나 빠져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실토하자면, 필자 역시 간혹 쓰는 수사법이다.) 우리는 정답이 하나라고 배워왔다. (객관식 시험의 답안도, 심지어 주관식의 답안도..줄곧 하나이며, 덕분에 우리는 하나의 답만이 정답이라고 배워왔고, 우리가 세상을 보는 창도 하나의 창만이 정답이라고 배워오고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이 하나뿐인 정답이란, '주관성'에 왜곡되지 않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할 때에만 찾아낼 수 있다는 환상을 가져왔다. 그 가운데 '주관성'이란 개인에게 편견과 선입견만을 씌워서 사태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게 만들고, 자연스럽게 하나뿐인 정답에 이르지 못하게 만들어 왔다. 그러나 뭇 사람들에게 묻노니, 과연 자기 자신이 객관적인가? 주관적이지 않은가? 이 말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나는 객관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식하거나 뻔뻔한 자 중 하나이리라고 말할 것이다. 현재의 세상에서 아마도 가장 객관적일 것을 요구받는 이들은 '판사'들이지만, 그들조차도 충분히 '주관적'이다. (미국의 연방대법원 재판관들을 잘 보라. 종신임기인 그들을 자신의 정권에 임명하려는 민주당, 공화당의 꼼수까지 같이 본다면 이해는 더 빠를 것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도(앎의 크기가 더 늘어나 볼 수 있는 창이 여럿인) 그들은 자신이 '주관적'인 존재임을 인정한다. 이렇게 본다면, <strong>대부분의 인간이 주관적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br>인간이 주관적임에 더하여 '가치지향(평가)'도 개인마다 다른데, '공정한' 혹은 '객관적인' 공과의 평가가 있을 수 있을까?</strong> 필자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대의 가치지향(평가)도 다르고, 시대가 요구하는 바도 다르며, 평가의 시점에 따라서도 행위는 얼마든지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 <strong>그렇다면 도대체 공과를 평가하지 말자는 것인가?</strong> 물론 아니다. 공과는 반드시 평가해야 한다. 공을 추켜세우고, 과는 현세와 후세가 본받지 않도록 징벌해야만 한다. 본디 신상필벌이란, 그 개인에게 내리는 것이지만, 그 의미는 사회 전체를 향하는 것이니만큼, 선례가 되도록 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공과를 평가하자는 것인가? 바로 사람들의 중지다. 다시 말해 국민 다수가 지닌 가치에 따라 공과를 평가해야 할 것이다. 길게 언급한 바처럼, 객관성이 보장되지 못 하며, 주관성의 판단 아래 있고, '가치지향(평가)'까지 다양함을 더한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지금 시대의 요구와 지금 시대를 사는 이들의 뜻을 모아 그에 의해서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br><br>친일파들이나 독립운동가들 그 외 수많은 일제 치하의 사람들은 제각기 각각의 '선택'을 했다. 친일파들은 '일본 제국의 영원불멸과 조선민족의 패망, 새로운 조국건설에 대한 부정, 그리고 그 가운데 자신의 입신양명'을 선택한 것이고, 독립운동가들은 '일본 제국의 분쇄와 조선민족의 영원불멸, 새로운 조국 건설과 그에 대한 투신'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선택대로 살아왔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nbsp;여전히 한일전은 이 나라의 온 국민을 뜨겁게 달구는 이슈이며, 독도 망언은 온 국민을 열불나게 하는 짓거리로 치부되고 있는 걸&nbsp;볼 때면, 필자는 이 사람들이 '일본제국을 분쇄하고 새로운 조선민족의 국가 건설'로 인해 생겨난 국가의 국민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인지하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일본 제국을 몰락시키고 스스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국가의 일원으로&nbsp;살고 있다. 결코 '새로운 조선 민족의 조국 건설을 부정하고 일본 제국의 영원불멸을 믿으며 그에 투신'한 자들의 기조를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이 나라 국민들의 가치지향은, 주관성은 자연히 후자의 것을 부끄러워하고 부정하며, 전자의 기조를 따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일본 제국을 분쇄하고&nbsp;피땀흘려 자신을 투신한 끝에 태어난 새로운' 조국의 국민들이 되려 '일본 제국의 영원불멸과 입신양명을 위해 새로운 조국 건설을 부정한' 이들에게 면죄부를 던지는 것이 옳은 행위일까?<br><br><strong>이 일은 정치적 사안이면서, 정치적 사안이 아니다.</strong>&nbsp;<br>무슨 말인고 하면, 우리 국민 다수의 뜻에 기초하여&nbsp;친일파와 독립운동가들의 공과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적 개념이 투입되므로 정치적 사안이라는 뜻이고, 다른 한편으로 친일파와 독립운동가들의 공과를 평가, 판단하는 것이 현재의 정치 구조와는 관련이&nbsp;없다(적다)는 점에서 정치적 사안이 아니기도 하다.&nbsp;일부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혼동하고 있으며, 일부 사람들은 고의로 이 두 가지를 혼동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 의도는 필경 '정치 탄압' 기타 등등의 이야기를 통해&nbsp;물타기를 시도하는 것이라는 점은 말할 나위가 없다.&nbsp;<br>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안은 정치적 사안(다수의 뜻에 기초한 평가라는 점)이기 이전에 역사적 고증이라는 점이다. 역사는&nbsp;fact에&nbsp;가치가 개입되어 있다고 하지만(1단계 fact 발견, 2단계 가치 판단), 심지어 우리나라의 경우는 fact의 단계에서 조차도 부족함이 많다. 일부의 누군가가 fact단계부터&nbsp;가치 판단을 시작하며 물타기를 해서 fact의 발견이라는 역사적 고증의 가장 기초적 단계부터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nbsp;일단 fact 단계에서부터 각종 자료들을 충분히 모으고 이후에 '가치지향'에 따라 평가를 해보도록 하자.<br><br>독일의 빌리브란트 수상은 폴란드의 유대인 묘지(?)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사죄를 하고&nbsp;자그나마 면죄부를 받았다. 그 일에 대해 독일인 그 누구도 빌리브란트가 "독일인들의 과거를 후벼팠다고" 말하지 않는다.&nbsp;일제 시대의 친일파들은 다 죽었지만, 필자는 아직 친일파의 후손들이 독립운동가들의 묘지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사죄를 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사죄는 하지 않고,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호도하고 덮기에만 급급한 그들이기에 지금에 와서 더 미친듯이 발광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며, '사필귀정'이라는&nbsp;고금의 진리를 전함과 동시에 사죄를 하면&nbsp;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말을 전해본다. 예전에 무릎팍 도사라는 코너에 김구라가 나왔을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시커먼 오물이 있으니 포장을 아무리 해봐도 냄새가 나는데 어쩔 수없다..?" 친일이라는 오물을 뒤집어 쓰고 있으면서 갖은 포장지로 포장을 해본들, 그 오물냄새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br></p><p><!--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       <rdf:Description	        rdf:about="http://skyisblue.egloos.com/1872327"	        dc:identifier="http://skyisblue.egloos.com/1872327"	        dc:title="공과 과를 따지다."	        trackback:ping="http://skyisblue.egloos.com/tb/1872327"/>       </rdf:RDF>       --><br>-------------<br><br>건전한 비판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그것이 내용에 대한 것이든, 문체나 문재에 대한 것이든 할 것 없이 애정어린 비판은 고마울 뿐입니다. 가급적 댓글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고, 남기실 때도 가급적 로그인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br></p><!--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       <rdf:Description	        rdf:about="http://skyisblue.egloos.com/1872327"	        dc:identifier="http://skyisblue.egloos.com/1872327"	        dc:title="공과 과를 따지다."	        trackback:ping="http://skyisblue.egloos.com/tb/1872327"/>       </rdf:RD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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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2 May 2008 17:11:2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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